오두산성은 경기 파주시 탄현면 필승로 369 오두산 전망대 일대에 위치해 있다. 지난 3월 19일 오전 파주향교에서 전교이취임식에 참석한 후 오후에 화석정, 율곡유적지인 자원서원과 율곡전시관 관람, 윤관장군 묘를 탐방하고 그 날 마지막으로 오두산성을 찾았다.
이 날은 미세먼지가 잔득 끼어 있고, 평일이라서 그런지 전망대를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차를 전망대가 있는 맨 위 버스주차장까지 올라갈 수 있었지만 그 보다 30-40미터 아래에 있는 승용차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밖으로 나오니 오두산성이란 표지판이 보였다. 표지판 아래에 잘 정비한 오두산성이 눈에 들어 왔다. 얇은 벽돌 같은 돌을 층층히 쌓아 놓았다. 이외에 다른 곳에서 산성이 있겠지만 고고학에 문외한으로 다른 곳에서 산성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산성을 표시한 간판을 보니 그 길이 길고 넓은 면적에 위치해 있다.
오두산성은 백제의 산성이다. 백제의 영토가 한강을 훨씬 지나 이곳 오두산전망대까지라니 미처 몰랐다. 나는 백제의 영토가 한강 이남으로만 알고 있었다.
오두산은 서북방향으로는 임진강이 흐르고, 서남방향으로는 한강이 흘러 이들 두강이 만나는 지점이다. 이 산은 평지에서 우뚝솟아 있어 경사가 심해 침입하는 적을 막기에 천혜의 요충지로 보였다. 전략적 요충지로 이곳을 점령하면 한성(서울) 지킬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민족문화백과사전』은 관미성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백제의 수도 한성(漢城)을 지키는 최고의 전략적 요충지로서, 당시 남하정책을 추구하던 고구려는 390년(광개토왕 1) 7월에는 석현(石峴) 등 10성을 빼앗고 이어 10월에는 광개토왕이 친히 군사를 7도(道)로 나누어 관미성을 공격하여 28일만에 함락시켰다.
이에 대해 방어망에 위협을 느낀 백제도 곧 반격을 시도하여 393년(아신왕 2) 8월에 백제장군 진무(眞武)가 1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관미성의 탈환 작전을 시도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광개토왕비문에 396년(영락 6)에 광개토왕이 정복한 백제 58성 중의 하나로 기록된 각미성(閣彌城)은 관미성과 동일한 성이다.
관미성의 형세를 《삼국사기》에서는 사면이 가파르고 바다물로 둘러싸여 있다고 하였는 바, 이에 따라 관미성의 위치를 강화군 교동도(橋洞島)에 비정하는 설, 임진강과 한강의 하류인 조강에 위치한 오두산성(鰲頭山城)에 비정하는 설, 또는 예성강 하구에 비정하는 설 등이 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이곳을 관미성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곳은 광개토왕비문, 삼국사기, 김정호의 지도에 나오는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관미성이 이곳 오두산이라면 광개토왕도 이곳을 점령하고 유유히 흐르는 한강과 임진강을 보았을 것이다.
오두산 전망대에 올라 임진강과 한강을 보니, 미세먼지 속에 아련하게 보였다. 북한 쪽에 있는 건물은 전혀 이지 않았다. 오두산 전망대가 북한을 보는 전망대가 아니라 한강과 임진강의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보는 날이 빨리 오길을 기대하면서 오두산전망대를 내려 왔다.
오두산성이다. 이 산성을 삼국사기에 나오는 관미산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까이서 본 산성이다. 새로 쌓은 것 같아 약간은 믿음이 가지 않는다.
지도에 표시한 선이 오두산성이다. 제법 넓은 범위에 있다.
등고선을 따라 산성이 연결되어 있다.
북쪽 방향의 자유로이다. 저 다리를 지나 오두산전망대로 올라 온다.
오두산전망대 건물이다. 거의 인적이 없다.
고당 조만식 선생의 동상이 전망대 아래에 있다.
전망대에서 본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이다.
한강은 좌측, 우측은 임진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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