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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율곡 이이 선생을 배향한 자운서원 방문

by 仲林堂 김용헌 2019. 3. 20.

파주향교 전교 취임식 후 유교신문 부산주재기자며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인 송진모 선생과 함께 화석정을 둘러보고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 산5-1 율곡유적지를 방문했다. 이 유적지에는 율곡 가족의 묘, 율곡 신도비, 자운서원, 율곡기념관이 있다.


이곳에 도착하니 오고 가는 관광객이 거의 없다. 넓은 주차장이고, 율곡선생유적지 출입문에 들어서니 널직한 정원에 인적이 없다. 조용해서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어 좋다지만 대현인 율곡의 유적지에 사람이 찾지 않는 다는 것은 우리의 도덕이 떨어져서 그럴가? 아니면 유림의 잘 못 일가? 문제가 많이 있다는 생각이다. 


율곡은 퇴계와 쌍벽을 이루는 우리나라의 현인이다. 퇴계 이황을 모신 도산서원과 비교를 하게 된다. 도산서원에는 수 많은 인파가 끊이지 않는다. 도산서원은 주변 산하가 아름다운 명소라는 잇점도 있지만 퇴계의 많은 후학들이 지금도 추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 가 생각해 본다. 제자들이 훌륭하니 선생님이 더 훌륭해지지 않았을 가 싶다.


또하나는 도산서원은 1561년 설립되어 1576년 완공 이래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는 국가 보물로 지정되었지만 자원서원은 1615년 창건되었고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69년에 복원되어 도산서원에 비하여 건물로도 역사가 일천하다. 


대원군 서원철폐령에  전국의 서원 가운데 오직 47곳만 남게 되고, 600여 곳이 정리됐다.  그 중 경기도에서는 12곳이 존치되었는데 어떻게 대유학자인 율곡을 주벽으로 모신 자운서원이 철폐대상으로 선정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서원의 건물 배치는 자운문을 들어서면 강인당 건물이 중앙에 있고, 강인당을 지나면 동서로 동재에 입지재가 있고, 서재에 수양재가 있다. 여기서 위로 오르면 내삼문이다. 내삼문을 지나면 맨 위에 율곡의 모신 문성사가 있다.  

자원서원의 정문이라고 할 수 있는 자운문이 앞에 있다.


자운문이다. 자운산 아래에 있어 자운문이라고 한 듯하다.


자운문 현판이다. 자운이란 붉은 구름이니 경사로움을 상징하는 곳이라는 뜻이 아닐 가?


유생들에게 강의를 했던 강당인 강인당이다.


강인당 현판이다. 강인당(講仁堂)이란 인을 강의하는 건물이다. 인(仁)을 강의하는 건물이란 뜻이다.


입지제(立志齋)는 동재(동쪽에 있는 기숙사)의 현판이다. 입지(立志)는 뜻을 세운다는 의미이다.


수양재(修養齋)는 서재(서쪽 기숙사)의 현판이다. 자신을 닦고 키우는 건물이란 뜻이다.


고목이 이 서원의 역사를 말없이 이야기 하고 있다.


묘정비이다. 이 서원의 설립 목적 등을 기록한 비석이다. 내삼문 앞 서쪽에 있다.


비문을 쓴 사람은 우암 송시열이다.


묘정비의 내용을 근래 한글로 풀이하여 동판에 새겨 놓았다.

내삼문이다. 이 문을 지나면 위패를 모신 사당인 문성사가 있다.

 

문성사이다.


문성사 현판이다. 문성(文成)은 율곡의 시호이다. 시호란 임금이 사후 공덕이 있는 관직이 높은 관리에게 내리는 이름이다.



문상사 주벽에 모신 문성공 율곡의 신주와 초상화이다.

 

율곡 상반신 초상화이다.


율곡의 제자인 사계 김장생의 신위를 동쪽에 배향했다.


남계 박세채 선생의 초상화와 신위를 서쪽에 배향했다.


문성사 앞에 있는 향나무이다.


강당인 강인당 앞 고목이다.


문성사 앞에서 본 자원서원의 건물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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