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릉(사도세자 릉) 제례가 4월 7일 융건릉 중 융릉에서 있었다. 아주 따스했던 날씨가 갑자기 바람이 불고 기온이 뚝 떨어져 췄다. 제례 참배하려 왔던 여러 참배객들이 바람을 피해 비각 뒤에 머물렀다. 나도 그들을 따라 잠시 그곳에서 있으면서 비와 비각의 문양을 살펴 보았다.
홍살문이 있고, 그 좌측에 음식을 장만하는 수라간, 정면에 제사를 지내는 丁자 모양의 정자각, 그 뒤에 릉침이 있다. 우측 나무 사이에 검게 보이는 작은 건물이 비각이다.
점자 안내도라 점자표시만 잘 되어 있으면 그만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설명하면, 금천교를 지나 홍살문에 이른다. 거기서 서북쪽으로 제례 때 음식을 간단히 데우는 장소인 수라간이 있다. 이번 제례 때는 면기(면을 담은 그릇) 1기와 탕을 담은 그릇 2기를 놓았다. 홍살문에서 신도가 정자각까지 이어져있다. 신도는 축함을 든 축관만이 갈 수 있는 길이다. 임금도 신도를 갈 수 없고 신도 옆에 있는 어도를 가고, 일반인은 어도 옆에 있는 길을 간다. 정자가 뒷편 서쪽에 축문과 폐백을 태우는 예감이 있고, 그 동쪽에 비각이 있다.
산소에는 정면 중앙에 장명등이 있고, 좌우로 앞에서 석마(石馬), 무인석, 문인석, 망주석이 있다. 능침 바로 앞에 혼이 머무르는 혼유석이 있다. 망주석 뒷편에 좌우로 석양(石羊)과 석호(石虎)가 있다. 둘러 친 담을 곡장 또는 곡담이라고 한다.
1900년에 세운 蔣祖懿皇帝(사도세자)隆陵이라고 전서체로 써 있다. 총상(銃傷)이 보인다. 총상은 북쪽으로 향햔 곳에만 있었다. 아마 6.25사변 때 이 비각 속에 숨어서 북쪽에서 침입자를 방어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조 13년(1789년) 세운 思悼莊獻世子 顯陵園이다.
비각의 용머리 모양의 추녀이다.
석가래에 연꽃문양이 있다.
우리나라 단청은 고려시대 불교로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그의 의미는 윤회사상과 업보 등에 관한 것이라고는 하나 잘 알 수 없다.
붉은 창살이 있고, 그 가운데에 태극문늬 조각이 있다.
초익공이 있다.
석가래가 균일하다.
먼 곳에서 본 융릉 모습이다. 정조가 이곳에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릉을 잡은 것은 최고의 명당이라고 해서 이다. 그 당시 릉 앞에 있는 800여채의 집이 있었다고 하나 이들 가옥을 현재의 수원으로 옴기고 이곳을 릉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칙면에서 본 릉 모습이다.
홍살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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