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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지네와 닭 이야기가 있는 99칸 한옥, 정읍 김명관 고택

by 仲林堂 김용헌 2018. 2. 9.

김명관(金明寬)은 정조 8년(1784)에 한양에서 내려와 전라북도 정읍시 산외면 공동길 72-10 청하산 아래 명당을 골라 10여년에 걸쳐 99칸 한옥 집을 짓고, 대문 앞에 연못을 파놓았다. 

 

이 집은 조선 후기의 호남지방 상류층 전통 한옥으로 후세에 보수 또는 개조되지 않아 거의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주위 환경이 잘 정돈되어 있어 가옥과 조화를 이루며, 건축학적으로 훌륭한 건축물로 대한민국 중요민속문화재 제26호(1971. 05. 27 지정)로 지정받았다. 소박한 구조와 건축가의 독창성, 조선후기 사대부 가옥의 중후한 모습을 대체로 원형대로 잘 유지하고 있어 건축을 비롯한 여러 분야의 좋은 연구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 집의 관리는 정부에서 하고 있지만 주인은 여전히 그의 7대손인 김용선이다.


명관은 판교공의 10대손으로 1755년에 태어나 순조(純祖) 5년(1805) 을축(乙丑) 증광시(增廣試) 생원 3등(三等) 20위로 진사였다.  아들 상홍(相洪)은 1819년(순조 19) 기묘(己卯) 식년시(式年試) 생원 3등(三等)  47위로 진사가 되었으며, 돈령부 정3품 당상관 도정(都正)이었다. 손자 기풍(箕豊)도 1855년(철종 6) 을묘(乙卯) 식년시(式年試) 생원 3등(三等) 37위로 진사였다.

 

명관의 할아버지는 증병조참판 중진(重珍)이다. 중진은 큰 부자였다고 한다. 중진의 손자 명관은 어린 나이에 풍수에 관심이 높아 전국을 다니면서 명당을 찾았다고 한다. 그가 17살이 되던 해 이곳 정읍 산외면 오공리가 천하명당 터라고 찾았고, 할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12년 동안 이곳에 집을 지었다고 한다. 

 

이곳은 해발 150m의 청하산(靑蝦山)이 둘러 있어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을 이루고 있다. 청하산은 그 모양이 지네를 닮았다고 하여 지네산이라고도 부른다. 이 집이 들어선 들 건너편에는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안산(安山)으로 독계봉(獨鷄峰)과 화견산(火見山)이 있다. 독계봉(獨鷄峰)은 홀로 닭이 있는 봉우리란 뜻이다. 지네가 있지만 닭이 잡아먹는 안산(安山)의 지형이다. 

 

집 둘레에 나무를 많이 심어 화견산과 독계봉을 가리고 숲을 이루어 지네가 습지에서 잘 살 수 있도록 하였다. 또 지네가 지렁이를 잘 먹는다고 하여 집 앞에 폭이 좁고 길이가 긴 지렁이 모양의 연못을 팠다고 한다. 이 연못은 그러나 크기가 약 200평이었으나 줄어들었고, 원형도 많이 변해 지네 모양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이 집에는 기풍(箕豊)의 5대손인 동수, 갑수, 인수, 을수, 경수, 상수(상훈), 병수가 함께 살았으나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곡간의 규모로 보아 2천석을 하는 큰 부자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기풍(箕豊)의 고손(현손)인 상훈(商勳)은 이 집에서 태어나 자랐고, 서울대학교와 미국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금융감독원 부원장과 국민은행 은행장을 역임했다. 나는 광산김씨판교공파종중의  회장/도유사로 있으며, 상훈씨는 고문으로 있다. 상훈씨의 안내로 6-7년전 왔었고, 지난 2월 1일 두번째 방문에는 김기점 해설사의 친절한 안내로 둘러보았다. 그 때보다 관광지로서 주차장 등 주변이 많이 정화된 모습이다.

 

 

고택 앞에 풍채 있는 소나무 한 그루가 찾아 오는 이를 마주하고 있다. 우측편에 고택이 있다.

 

 

이 고목은 말 없이 이 고택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바깥행랑채가 담장 역활을 하고 있다. 뒤에 잇는 산이 청하산(靑蝦山)이다. 하(蝦)는 두꺼비 하, 새우 하이다. 청하산은 푸른 두꺼비 산이라는 뜻이다. 이 고택에 내려오는 전설은 두꺼비가 아니라 지네로 보고 있다.  

  

 

앞에 보이는 산이 독계봉(獨鷄峰)이다. 홀로 닭이 있는 봉우리란 뜻이다. 지네가 있지만 닭이 잡아먹는 안산(安山)의 지형이라고 한다.  

 

 

이 가옥도 김명관 고택이었으나 지금은 개인이 소유 사택(私宅)이다.

 

 

좌측 가옥은 사택이고 우측부터 김명관 고택이다. 김명관 고택은 국가지정문화재로 국가에서 관리하고 사람은 거주하지 않고 있다.

 

 

꽃 문양이 있는 꽃담이다. 이런 꽃 문양이 이 담장에 3개 있다.

 

 

안사랑채이다. 사랑채는 남자 주인이 거주하는 곳이다.

 

 

고택의 중심에 있는 안채이다. 이 안채의 좌측에는 시어머니가 거주하고, 우측에는 며느리가 가주한다.

ㄷ자 형으로 앞쪽으로 나온 곳이 부엌이다.

 

안채의 가운데는 대청이다. 대청은 거실과 같이 시어머니, 며느리, 자식 들이 같이 생활하는 공간이다.

 

 

시어머니가 사용하는 안채의 방이다.

 

 

대청이 크가. 남쪽 지방이라 비교적 따스하여 여름에 주로 사용하는 대청이 크다.  

 

 

좌측은 부엌 창문이다. 문양이 고급은 아닌 소박하지만 맛깔스럽다.

  

 

좌측은 행랑채 부억이고, 우측은 뒷간이다. 기둥을 연결한 굽은 간살(?)이 멋이 있다.

 

 

부억에 햇살이 들어 오고 있다. 창살이 있는 창문이 3면에 있다.

 

 

부엌 창문이 단순하면서도 멋이 있다.

 

 

지게, 맷돌, 벌통 등 몇개의 가재도구다.

 

 

신주를 모시는 사당이다. 사당에는 감실이 있고, 감실 안에 신주가 있으나 감실도 신주도 보이지 않았다.

 

 

안 사랑채이다.

 

호지집이다.

 

 

호지집 안쪽이다.

 

 

바깥사랑채이다.

 

좌측집이 바깥사랑채이다.

 

 

6칸반 바깥사랑채이다.

 

 

멀리서 본 전경이다.

 

 

 

예전에는 200평 정도로 큰 규모였다고 하나 지금은 작은 연못이다. 금년에 복원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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