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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수원화성 화홍문(북수문) 꼼꼼하게 보기

by 仲林堂 김용헌 2018. 1. 21.

수원화성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화홍문(華虹門)과 방화수류정을 먼저 꼽는다. 특히 화홍문은 수원을 남북으로 가로 지르는 버느내(수원천) 위에 세운 수문으로 북수문(北水門)이라고도 하며 화려한 무지개라는 뜻으로 화홍문이라고 부르고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20년 중반 일본인이 관광객을 모집하여 안내한 곳 중 하나가 화홍문이었고, 1원 지폐의 도안에도 나왔다.

  이 문은 수원천의 범람을 막고 외적의 침투를 방어 목적으로 건설했지만 물 길 위에 세웠기 때문에 수해를 많이 받았다. 수원시청/ e-book 홍보관/역사자료/수원시사16권 '이곳에 가면 수원의 역사가 보인다'/상대영이 쓴 "제2장 다함께 돌자, 화성한바퀴"에 다음과 같은 피해와 복원 기록이 있다.

  1846년(헌종 12) 6월 9일부터 이틀밤낮으로 폭우가 쏟아져 화홍문, 남수문, 매향교가 무너지고 성곽 곳곳이 피해를 입었다. 화홍문은 2년 만인 1848년 수문과 누각이 복원되었다. 1885년(고종 22)에도 여름 장맛비가 하천을 흘러넘칠 정도로 내리면서 화홍문 누각이 심하게 위태로웠으므로 이듬해 누각을 수리했다. 또 다시 큰 피해를 입은 것은 1922년이었다. 7월28일과 29일 양일간 내린 폭우로 수원시가지가 물에 잠기는 큰 피해를 입었는데 이 때 화홍문의 석문 일부가 파괴되었고, 8월 23일 또 다시 내린 폭우로 석문이 전부 파괴되었다. 1924년 12월부터 1925년 사이에 7개의 수문이 완공되었고, 누각은 1933년에야 복원되었다.


수원시청 e-book 화성성역의궤 권2에는 보국 숭록대부 판중추부사 윤숙(尹塾)이  1796년(정조 20) 11월 지은 화홍문 상량문이 있다. 화성의 문이나 루에는 모두 명문장의 상량문이 있다. 아래는 화홍문 상량문 중 시(詩)이다. 과연 이런 문장을 질 수 있는 사람이 지금 얼마나 될 수 있을 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화홍문(華虹門) 상량문(上樑門)


어여차 대들보를 동쪽으로 밀어라

천년 만년 화성 남쪽의 궁궐이다. 용이 엎드린 다리 아래의 밝고 찬 물은 원기가 길이 흘러 무지개가 걷히지 않는다.


여여차 대들보를 서쪽으로 밀어라

교릉을 바라보니 아름다운 기운 가지런하구나.

오동나무 한 그루꽃 피는 저녁에 아흡 무더기 상서로운 봉황새 여기 와서 깃들이네.


어여차 대들보를 남쪽으로 밀어라.

떼지어 나는 갈매기떼 맑은 연못에 가득하다.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도 임금 은혜 무거운 줄 아는지 다투어 봄 물결에 뛰어 올라 좋은 미끼 삼키누나.


어여차 대들보를 북쪽으로 밀어라.

하늘처럼 큰 길 서울에 이어졌네. 400개의 별처럼 널리 있는 국내의 고을에 온갖 물건을 풍성하게 다 모였다.


어여차 대들보를 위쪽으로 멀어라.

구슬 주머니와 금으로 만든 거울을 밝게 베풀어 놓았다. 화홍문 대들보는 백척이나 되는데 천명은 더욱 세로와 큰 덕은 냇물처럼 흘러 좋은 경치로 보답한다.


어여차 대들보를 아래로 밀어라.

모든 냇물 출렁출렁 남쪽 들로 들러 간다. 빠른 물결 밤낮으로 홍문(虹門)에 흘러드니 모든 샘에서 피어나는 연기 하얗게 씻겼구나.


화홍문은 수문과 그 위에 건축한 누각이 있다. 나는 1월 14일 수문의 겉과 속, 앞과 뒤를 살폈고, 누각의 밖과 안, 그리고 여러 각도에서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야경 사진 등 일부는 몇 년전 찍은 사진이다. 


우측에 있는 건물은 방화수류정이다.


수해를 막는 상징 동물이 화홍문 좌우로 하나씩 있다. 

 



















7개의 수문 중 가운데에 있는 수문이 조금 크다. 




성밖에서 본 화홍문이다.


서쪽 측면에서 본 모습이다.






수문에서 바로 붙어 4계의 계단이 있다. 처음에는 바로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5-10m 떨어져 낙차가 있었으나 1924년 복원할 때 변형했다.













수원화성성역의궤에 있는 화홍문이다.


일제 강점기에 1원짜기 돈에 화홍문이 도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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