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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수원화성 창룡문 복원을 보며

by 仲林堂 김용헌 2018. 1. 3.

수원화성의 사대문 중 하나인 창룡문(蒼龍門)은 6.25 때 문루가 완전히 소실되어 새로 복원하였다. 창룡문도 다른 화성의 유물유적과 같이 화성성역의궤에 도면과 건설 내역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창룡문은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 1세대 건축가인 이한철이 화성을 수리했을 때 작성한 설계도면이 남아 있어 복원이 가능했다고 한다. 화성박물관에서 수원성복원정화사업 4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으로 발간한 『1970년대 수원화성 복원과 기록』은 당시 폐허가 된 창룡문 사진과 복원 기록을 전하고 있다.   


서울의 4대문과 보신각은 하늘이 모든 사람들에게 내려 준 밝은 덕(德)이라고 할 수 있는 오상지덕(五常之德)인 의예지신(仁義禮智信)에서 한자씩을 따왔다. 이는 무보다 문을 숭상하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수원의 화성의 4대문은 오상지덕과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 북문은 장안문(長安門), 남문은 팔달문(八達門), 동문은 창룡문(蒼龍門), 서문은 화서문(華西門)이다. 창룡문으로 보았을 때는 문(文)보다는 무(武)를 더 생각한 듯하다. 창룡(蒼龍)은 동쪽을 방위를 맡은 태세신(太歲神: 음양가에서 길흉 방위를 맡아 보는 여덟 신의 하나)을 상징하는 짐승이다. 용(龍)은 지혜의 문(文)보다는 힘을 뜻하는 무(武)를 표현한다고 보기때문이다.


창룡문은 장안문이나 팔달문에 비하여 누각이 단층이고 규모가 훨씬 작다. 화서문과 비슷하나 규모가 조금 작은 듯하다. 화서문은 온전히 보전되어 있어 창룡문 복원할 때는 화서문을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일성록에 있는 "창룡문 상량문" 중에 아래와 같은 글이 있습니다.

『팔달산(八達山)에 읍()하고 서쪽을 바라보니 위로 창륙(蒼陸)이 가깝고, 한 방면을 열어 동쪽을 제어하니 앞에 용성(龍城)이 바라보이네.』 

  앞에 있는 창륙((蒼陸)과  용성(龍城)에서 창룡을 따온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12월 31일 창룡문을 돌아 보았고, 일부 사진은 2016년 8월 20일 촬영한 사진이다.

정조 때 화성을 건설하면서 발간한 『화성성역의궤』 청룡문 외도(外圖)이다. 이 책자에는 그림과 함께 건설 자재 등 내역 등이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 화성을 수리하면서 이한철 선생께서 작성한 창룡문 설계도면이다.


1976년 쯤 복원당시의 사진이다.


복원 당시 문루는 없고 홍예만 남은 창룡문이다.


2016년 8월 2일 촬영한 창룡문 사진이다.


남쪽 성벽에서 바라 본 창룡문이다.


성안쪽에서 정면으로 바라 본 창룡문이다. 광각렌즈로 촬영했다.


창룡문 현판이다.


이 지역을 담당한 부대 이름이다. 이 부대는 창룡위 우부에 속한다.


누각 외부 천정이다.

누각 내부 천정이다.


대들보이다. 창룡문은 장안문이나 팔달문에 비하여 규모가 작다.


창룡문 홍예와 옹벽이다.


홍예 천정에 있는 용 그림이다.



홍예와 옹벽 광각 사진이다.


성문 안에서 밖으로 본 모습이다.



성밖에서 성안으로 본 모습이다.  뒤편에 연무대 건물이 보이다.


창룡문 전면 좌측에 성벽에 아래와 같이 이 건물에 세우면서 감독과 시공자 이름이 새겨 있다. 감동(監董: 감독)에 전영장( 전 京畿監營?)에 김기승(金箕昇), 감동(監董: 감독)에 김혁(金爀), 패장가선(牌將嘉善)에 이필재(李弼載), 절위(折威)에 홍OO, 석수(石手)에 김명한, 등 1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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