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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40년 지기와 같이 걸어 본 직지사(2008년 5월 26일)

by 仲林堂 김용헌 2017. 7. 11.


사십년 지기 동창과 함께 다시 직지사를 찾았다.

예전의 기억은 하나 없고 처음 방문하는 것과 같다.

대학을 갓 입학한 새파란 젊은이는 환갑을 맞이하는 사람으로 되었고,

10년 강산이 4번이나 바뀌었으니 산천도 변했 있었지만 40년간 쌓은 우정은 변함이 없이 더 깊어 갔다.



입장권을 파는 매표소 정문 간판은 동국 제1의 가람인 황악산의 문이라고 쓰여있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절일 가? 경주 불국사, 설악산이 신흥사, 가야산의 해인사, 동래의 범어사보다 크단 말인 가? 뻥튀기가 있지 않나 하면서 약간의 의문을 가진 채 출입문을 들어섰다.  아침 식사 전 한 줄기의 비가 내리더니 더 이상 비는 없고 대지는 촉촉히 이슬을 먹음고 있다. 좀 이른 시간이라 사람은 많지 않고 산책하기에 안성 맞춤이다.


아름들이 고목이 지나가는 이들에게 이 절의 나이를 말해주고 있다. 숲이 우거지고 고목이 늘어 서 있어야 절 맛이 난다. 고목에 서 나오는 옛 향기를 맛 보며 성인 석가모니를 향해 첫 대문을 통과하고 다음 문을 행해 간다.  


사천왕이 계신 천왕문이다. 사천왕은 불심을 지켜주는 신이라 알려졌다. 세상이 많이 바꿔 이제 그 뜻을 알고 지나는 이는 별로 없겠지만 수백년간 이 사천왕은 알던지 모르던지 우리를 지켜왔다.  


사천왕의 얼굴이 한국인의 얼굴이 아니라 곱슬머리 수염과 눈섭의 외국이다. 옛 사람들도 자그마한 동양 사람보다 서구인이 힘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사천왕도 우리네 얼굴이 아니라 중동인의 인상이다. 


대웅전 앞에 있는 만세루이다. 만세를 행해 걸어 가는 사십년지기 친구들이다. 만년이라도 같이 걸어갈 것만 같은 친구들이다. 한 평생 살아가는 것이란 친구를 찾는 것이라고 했다. 혼자서는 외로워 같이 걸어 가고 싶은 것이 우리 인생이다. 같이 걸어 가는 모습이 참 좋다.


연등으로 가득한 대웅전은 제 모습을 볼 수 없다. 신라시대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한다. 사명대사가 30세에 이 절의 주지스님이었다고 한다. 사명대사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군으로 싸웠다. 임진왜란 때 이 대웅전도 불에 타 다시 세웠다고 한다. 앞에 보이는 탑은 경북 문경의 한 절에 있던 3개의 탑을 1994년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3층의 탑신은 그대로 인 것 같고 탑 머리는 새로 복원한 모습이다.


직지사 터는 국내의 다른 어떤 사찰 못지 않게 널직하고 옛 건물은 많지 않으나 최근 건축물이 많이 보였다. 예전에 동국제1의사찰을 재현하려는 듯 해보였다.



난 두루 세상을 다녀 보았지만 여기 보이는 만덕사만큼의 크고 잘 단장한 한국식 건축물은 없었다. 만덕사는 1991년부터 1994년에 지은 건물로 회의장으로 쓰인다고 한다. 우리 불교 역사에서 지금시대 만큼 불사는 한 적은 없을 것이다. 물도 차면 기운다고 했는데, 최근 너무 많은 불사는 자연을 거슬리고, 그리고 불심보다는 물심이 앞서지 않았나하는 염려가 앞선다.




직지사는 63개 소속 사찰(말사)을 거느린 국내 28개의 본산 중 하나이다. 직지사 말사 중 하나인 운수봉에 있는 암자이다. 이 암자까지 우리 일행은 우정을 나누며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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