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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서원

퇴계 이황 묘소와 자명(自銘)

by 仲林堂 김용헌 2015. 12. 7.

퇴계 이황(1501-1570)의 묘소는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종택에서 2km쯤 지나 동암종택이 나오고, 여기서 서쪽편에 있는 산을 가파른 계단 150m지나면 있다. 동암은 퇴계의 막내 손자 이영도(1559-1637)이다. 퇴계는 큰 인물이지만 묘소는 크기도 작은 편이고 조촐했다. 비석도 선생의 유명에 따라 관직이 없이 退陶晩隱(퇴도만은) 眞城李公之墓(진성이공지묘)라고만 써져 있다. 그 후 제자인 고봉 기대승이 쓴 묘갈문이 새겨 넣었다고 한다. 퇴계는 수 많은 훌륭한 제자를 길러냈으며, 대표적인 제자가 서애 유성룡과 학봉 김성일이다. 김성일은 조선통신사로 임진왜란 전에 일본에 다녀와서 선조에게 전쟁이 없을 것이라고 해서 비난을 받았으나 그도 나라가 혼란할 것을 염려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말했다고 알려졌다.

 

선생이 죽기 며칠 전에 쓴 자명(自銘, 스스로 쓴 비명)이다. 8언 연시로 구성되어 있다.

 

生而大癡 壯而多疾 中何嗜學 晩何叨爵 (생이대치 장이다질 중하기학 만하도작), 叨: 탐낼 도

타고남이 크게 어리석고 자라서는 병도 많았는데 중년엔 어쩌다 학문을 즐겨했고, 만년에 어이하여 벼슬을 받았던고

學求愈邈 爵辭愈嬰 進行之跲 退藏之貞 (학구유막 작사유영 진행지겁 퇴장지정), 愈:나을 유, 더욱, 邈: 멀 막, 嬰: 간난아기 영, 더하다. 跲: 넘어질 겁

학문은 구할 수록 아득하고, 벼슬은 사양해도 더욱 주어지는데 나아감에는 잘못도 있었고, 물러서는 갈무리에는 곧게 하였네.

深慚國恩 亶畏聖言 有山嶷嶷 有水源源 (심참국은 단외성언 유산억억 유수원원), 慚: 부끄러울 참, 亶: 미뿔 단, 嶷: 산이름 의, 높다. 源: 근원 원, 끊이지 않고 흐르는 모양

나라 은혜에 심히 부끄럽고, 성현의 말씀 진실로 두려운데 산은 의연하게 높이 솟아 있고, 물은 끊임없이 흐르는구나.

婆娑初服 脫略衆訕 我懷伊阻 我佩誰玩 (파사초복 탈략중산 아회이조 아패수완), 婆: 할미 파, 娑: 춤출 사,  訕: 헐 뜯을 산, 伊: 저 이, 阻: 막힐 조, 佩: 찰 패,

처음 뜻대로 자유롭게 소요하니, 뭇사람의 비웃음을 벗었지만 내가 품은 생각 누가 알 것이며, 내가 지닌 패물 누가 즐겨 줄 것인가

我思古人 實獲我心 寧知來世 不獲今兮 (아사고인 실획아심 영지래세 불획금혜) 

내 옛사람을 생각하니, 진실로 내 마음과 부합하는 구나 어찌 오늘 세상을 알리요만은 지금과 부합하지 않겠는가?

憂中有樂 樂中有憂 乘化歸盡 復何求兮 (우중유락 락중유우 승화귀진 부하구혜) 

근심 속에 즐거움이 있었고, 즐거움 속에서도 근심은 있었네. 천명으로 살다가 돌아가니, 이 세상에 다시 무엇을 구하리요.


어떤 사람이 죽으면 그 제자나 가까운 사람이 고인의 행적을 쓰게 된다. 이것이 행장(行狀)이다. 행장은 공덕만 칭송하고 과실(잘못)은 숨긴다. 그래서 행장으로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바르게 할 수 없다. 본인 스스로 쓰는 행장과 같은 자명은 대부분 양심으로 쓰게 되며 바른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자명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양심적이지 않을 수 없으며, 바르게 살지 않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퇴계묘소 입구이다. 퇴계묘소에서 나온 날등이 이 바위 앞에서 멈춘다. 일행 중 한 사람은 이 바위가 정기를 받은 바위라고 한다. 공사표지판이 있어 혹시 훼손이 염려된다고 하자 감히 선생의 묘소가 있는 바위를 함부로 건드릴 수는 절대 없다고 한다.

계단이 가파르다. 중간 지점에 퇴계의 며느리 금씨 묘소가 있다. 그녀는 죽어서도 시아버지를 모시겠다고 시아버지 묘 아래에 자신을 묻어 달라고 했다고 한다. 친정으로 찾아 온 시아버지인 퇴계를 친정식구들이 심하게 박대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내색 없이 며느리를 사랑하자 시아버지의 인품에 감화되어 평생 시아버지를 극진히 모셨다고 한다.

 

이곳이 바로 퇴계의 묘소이다. 문인석, 망주석, 동자석, 묘비가 있다.

앞줄 4번째 분이 이상호 유교신문 주간이다. 모자 쓴 분 옆 책자를 들고 있는 분이 이시덕 경북 유도회 사무처장이다. 이 두분의 노력으로 유교신문 기자 연수를 할 수 있었다.

 

가운데 모자 쓴 여자가 해설사이다. 이번 안동지역 방문에 3분의 여자 해설사가 있었다. 한결 같이 한학에 고수이면서 능숙한 해설을 했다.

 

묘비의 방향이 전면이 아니고 측면이다. 일행 중 한 사람이 풍수적으로 좌측이 허하여 이 묘비가 막아준다고 했다. 큰 글씨로  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고 쓰여 있다. 퇴도만은은 퇴계의 호이고, 진성이씨는 본이다. 

 

좌측에는 망주석이고 가운데는 문인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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