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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山金氏 이야기

한국의 명가, 광산김씨 특별전시회 화보

by 仲林堂 김용헌 2015. 11. 18.

대전시립박물관 개관 3주년 기념으로 특별전으로 "한국의 명가, 光山金氏"이 한국문중문화유산연구원, 광산김씨대종중, 광산김씨허주공파종중 후원으로 대전광역시 유성구 도안대로 398 대전시박물관에서 2015년 9월 22일부터 12월 20일까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회 사진 화보이다.

 

충정공 김익겸(金益兼, 1615-1637)의 자손록이다. 충정공 김익겸의 세계(세계)와 간단한 족보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공의 할아버지는 김장생(1548-1631)이고, 아버지는 김반(1580-1640)이다. 아들이 서석 김만기(1633-1687)와 서포 김만중(1637-1692)이다. 숙종비 인경왕후의 할아버지이다. 맨 위에 29세 김익겸부터 맨 아래 39세 용완까지 있다.

 

종회시첩이다. 이 시첩에 관하여 광산김씨일가종친회는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종회시첩(宗會試帖)은 세로가 72.5㎝이고 가로가 38㎝크기의 25장으로 된 서첩인데, 명종2면(1547) 음력 8월 16일에 서울 정동(貞洞)에 살고 있던 황강(黃岡:金繼휘 15261582)선생을 찾아간 후조당(後彫堂:김부필(金富弼) 1516~1577) 형제와 그 외의 일가  여럿이 모여 목족을 다지는 종회를 열었는데, 이 종회가 정동에서 열렸다하여 일명 정동계회(貞洞稧會)라고도 하고, 이 모임이 기록으로 남아있는 이 나라 종회의 효시(嚆矢)가 된다. 그 때 황강이 시서를 쓰고 지은 근체시(近體詩)인데 내용인즉

『붉은 잎 노란 꽃으로 왼 산을 물 들였는데 / 서풍은 솔솔 불어 작은 시름까지 없애 주는구나
  7년 만에 만난 회포 풀어보고자 / 3년 상내 쌓인 슬픔도 잊기 위하여
  파는 갈렸지만 한 몸에서 나온 형제이며 / 가지는 달라도 뿌리가 같은 나와 자네일세
  은근한 이 정 잊지 않고 서로 좋게 지내면 / 저 멀리 후손에까지 미쳐가지 않으리』

그리고 175년 뒤인 경종2년(1722) 2월에 황강의 5대손인 온재(韞齋:김진옥(金鎭玉) 1659~1736)가 안동부사로 도임하여 그 곳 후조당종가(後彫堂宗家:당시 종손 김대(金岱) 1665~1747)에서 보관하고 있던 앞에 글을 발견하고 너무나 감격하여 모사하고 서악사(西嶽寺)에서 종회를 열고 화답하는 시를 지어 적은 것이다.

『종회를 열었던 그 당년에 받은 향기를 / 전해오던 소축(小軸)이 병화를 면하였구나
 서륜수계(敍倫修稧)하는 것은 혼연 어제와 같으니 / 술 마셔 취한 얼굴 대하여 보세
 유묵은 뚜렷하여 우리 선조임을 밝혀주고 / 두터운 정 또 다시 우리를 힘쓰게 하네
 여러 본으로 모사하여 후세에 전하고자 / 서로 나눠 태백 후손들도 간직하기 바라노라』

그로부터 또 40년 뒤인 영조 38년(1762) 8월에 온재의 손자 상성(相聖)이 의성현령으로 부임하여 속 서악종회를 열었을 때 안동종인 종구(宗九:치상(致祥)씨의 손자)씨가 위의 서첨을 보여주니, 이것은 나의 조부님이 황강선조의 시와 조부당신의 시를 손수 쓰신 것이니 소동파의 족보 서문을 보는 것처럼 반가운 일이니 더욱 애호하고 영원토록 없어지지 않게 보관하라는 발문(跋文)을 마지막에 적은 서첩으로 사진에서 “엽적화황(葉赤花黃)”은 황강시의 첫 구절이고, “태백(太白)”은 온재의 화답시중 끝부분으로 보물급에 속하는 귀중한 서첩이다.

퇴계 이황이 쓴 글씨이다. 퇴계선생서법이란 책에 있는 퇴계선생의 글씨이다.

 

총 30쪽이고 중국의 소강절이 지은 시를 퇴계 선생이 한쪽에 2자씩 총 60자를 썼다.

안동 군자마을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재산을 자손에 분배한 내역을 쓴 분재기이다. 광산김씨 밀직사공파 김효로(1454-1534)의 아들 김연(1487-1544)이 자손들에게 재산을 분배한 내역을 써 놓은 분재기이다.

김효로의 아버지 김회가 죽자 김효로의 어머니 노씨가 3남매에게 재산을 나눠준 분재기(分財記)이다.

 

임금이 내린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지금의 인사발령장과 같은 것이다.

승훈량(承訓郞)은 정6품의 품계이며, 형조좌랑(刑曺佐郞)은 정6품 관직명이다. 오늘날 형벌을 주는 부서의 실무자에 해당하는 직이다. 김덕령의 관직은 정6품으로 높지는 않았다.

贈通政大夫 兵曺參議者(증통정대부 병조참의자): 증(贈) 죽은 다음에 내려주는 직위이다. 통정대부는 정3품의 품계에 해당하는 직위로 당상관이다. 병조참의는 지금의 국방부차관에 해당하는 직위이다. 이 교지를 보면 김덕령 장군은 살아서 정6품으로 직위가 낮았으나 죽은 다음 파격적으로 정3품으로 높은 직위를 높이 올렸다. 

강희(康熙)는 청나라의 연호로 서기로 1668년이다.   

 

고종이 돈암서원에 내린 등잔이다.

 

沙溪十詠은 사계 김장생이 주변 풍경을 보며 읊은 아래의 글귀 10가지이다. 

전계조어(前溪釣魚)-
후윤탁족(後潤濯足)-
계룡방은(鷄龍訪隱)-
대둔심승(大芚尋僧)-
매소명월(梅明月)-
죽오청풍(竹塢淸風)-

연지취우(蓮池驟雨)-
유정취연(柳汀炊煙)-
횡사담경(舍談經)-
임정관덕(林亭觀德)-

 

이재(李縡)가 지은 사례편람(四禮: 관홍상제)이다. 이 책은 예학에 관한 깊은 조예를 토대로 편술된 것인데, 당시 거의 맹목적으로 시행하던 주자의 가례 허점을 보완하면서 이를 현실적으로 사용하기에 편리하도록 요령있게 엮은 것이다.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의 금보(금 도장)이다.

 

김진규의 묘지석이다. 이 묘지석은 도굴된 것을 범인을 잡아 되 찾은 것이다. 묘지석은 묘전에 살아서 고의 행장을 기록한 돌이다.  

 

서포 김만중이 지은 구운몽 원본이다.

 

서포 김만중의 초상화이다.

 

 

서석 김만기이다.

 

조선 전기 4대 명필로 유명한 김구의 글씨이다.

서석 김만기에게 내린 교지이다. 그는 살아서 대제학이었으며, 죽어서 영의정까지 올라갔다.

 

김구에게 내린 교지이다. 그는 죽어서 벼슬이 자헌대부 예조판서로 장관급까지 올라갔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요리 책이다. 광산김씨 안동 예안파 가문 탁청정 김유(1491-1555)과 김령(1577-11641)이 지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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