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갑사 다향각(茶香閣) 옆에 작은 공우탑(功牛塔)이라는 투박한 3층석탑이 있다. 어제 (11월 4일) 친구와 같이 이곳을 방문하였다. 공우탑은 공을 세운 소의 탑이란 뜻이나 안내판에는 어떻게 공을 세웠나하는 내용은 전혀 없고 그 탑에 쓰인 글자 풀이만 다음과 같이 해 놓았다.
臥塔起立 누운 탑을 세우니
人道偶合 사람들의 방식에도 우연히 부합된다네.
三兮乙乙 세 번이나 힘들였으니
闕功居甲 그 공덕이 으뜸이라네.
공우탑과 이 글의 내용이 전혀 맞지 않는다. 검색을 해 보니 누군가가 근거는 밝히지 않고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절을 새로 지으면서 장정 10명이 하여도 힘든 일을 한 소가 짐을 지어주면 혼자서 암자로 날라주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불사회향날 소는 쓰러져 죽고 말아 승려들이 그 은공을 기려 탑을 세우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마이뉴스의 안병기기자가 쓴 2007년 9월7일자 친일파의 자화자찬 탑으로 둔갑해버린 '공우탑' 을 읽어 보고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안기자는 쓴 내용은 "건축자재를 운반하던 소가 냇물을 건너다 죽자 그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탑을 세웠다는 전설이 내려온다고 했다. 그 탑에 친일 매국노 윤덕영이 이 탑을 후천세계의 영화를 기대하며 이곳으로 옮겨놓고 자신의 노력이 사람의 도리에 합치되는 것이라는 자화자찬의 글을 새겨 놓은 것이라고 했다.
그의 글을 읽고 소의 공덕은 빼고 사람의 공덕을 써 놓게 되니 그렇게 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안기자는 안내판을 바꾸던가. 없애버리라고 했으나 8년이 지난 지금까지 하나도 바뀐 것이 없다. 아직도 공우탑은 친일 매국노 윤덕영의 공덕을 칭송하고 있다. 나는 이 간판 대신에 다음과 같이 안내판을 세우기를 바란다.
공우탑은 절을 짓기 위하여 자재를 운반하던 소가 냇물을 건너다 죽자 그 넋을 기리기 위하여 승려들이 탑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그런데 친일매국노 윤덕영(18733-1940)은 말년 공우비 옆(지금의 茶香閣)에서 별장을 짓고 살면서 이 탑을 다시 세우고, 소의 공덕이 마치 자신의 공덕과 같다는 내용의 글을 새겨 넣었다. 이것은 소의 공덕을 마지 자신의 공덕으로 둔갑시킨 매국노의 흔적이다.
윤덕영은 1910년 경술국치 당시 드러나지 않게 막후에서 크게 활약한 인물이다. 그는 순종황제의 두 번째 정비인 순정효황후의 숙부였다. 치마 속에다 옥새를 감추고 내놓지 않았던 순정효황후를 위협해서 옥새를 강탈한 후 순종에게 합방늑약에 옥새를 찍도록 강권했던 사람이다. 그 공으로 나중에 그는 중추원 부의장까지 역임하는 등 영화를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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