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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장용영의 무예24기 공연

by 仲林堂 김용헌 2015. 4. 6.

정조대왕은 문무를 겸비한 왕이었다. 그는 문신들 가운데 재주가 있는 자들을 뽑아 공부하게 한 다음 그 성과를 시험을 통해 확인하여 임용 승진의 자료로 삼고자 한 것으로 규장각이 이를 주관하게 하여 왕정에 적극적으로 이바지할 신하들을 확대해 나갔다. 근 20년간 10회 시행하여 100여 명을 배출하였다. 무반의 요직인 선전관() 강시()제도도 함께 시행하여 1783년의 장용위(), 1791년의 장용영() 등 친위군영 창설하였다.

   규장각을 설치하여  1784년(정조 8) 정조는 생부 사도세자()의 존호를 장헌세자()로 바꾸고, 이를 축하하기 위한 경과()를 실시, 무과에서 무려 2,000여 명을 합격시켰다. 이듬해 홍복영()의 역모사건이 일어나자 왕의 호위를 강화하기 위해 경과에 합격한 무사들을 흡수하여 장용위()를 설치하고 약 500명의 인원을 5대()로 나누어 편제하였다.
  1788년 장용영으로 개칭하였고, 1793년 도성() 중심의 내영()과 그 외곽인 수원 성곽(사적 3) 중심의 외영()으로 확대 편제하여 기존 5군영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1795년 다른 군영의 군대를 흡수해서 5사() 23초()의 편제를 갖추었고 장용사(使:장용영 대장)가 이를 지휘하였다.

수원시는 정조 때 장용영 군사들이 연매했던 "무예24기" 원형을 찾아 (사)무예24기보존회를 설립하여 무예24기단원은 무술을 연마하고 수원화성 행궁앞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지난 겨울 동안 중단했던 공연을 지난 4월4일부ㅋ터 재개하였다.  사진은 순간포착 예술이라고 했다. 날렵한 무사들의 무예를 몇 커트 잡아 보았다. 맨손으로 대련이 있었고, 활쏘기, 칼 싸움, 장대와 방패 대결, 집단 칼로 베기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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