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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숙종왕비 인경왕후 릉의 석물

by 仲林堂 김용헌 2014. 10. 26.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서오능)에 있는 숙종왕비 인경왕후 릉의 석물을 2014년 10월 25일 인경왕후 제향 전에 잠시 볼 수 있었다. 왕비릉이라 석물이 크고 정교하였다. 올해로 세운지 334년이 되었지만 보존이 잘되어 있어 수백년된 것 같지 않게 말끔하다.

 

익릉은 1680년(숙종 6) 10월 26일 인경왕후가 승하하자 현재의 위치에 능호를 익릉(翼陵)이라 하여 조영하였다. 숙종 연간에는 왕릉의 능제를 단순화하고 석물을 간소하게 제작하도록 명하였으나, 그 이전에 조영된 능이므로 기본적으로는 『국조오례의』의 제도를 따르고 부분적으로는 임진왜란 이후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익릉(翼陵)은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의 단릉(單陵)이다. 곡담을 설치하였고, 봉분에는 병풍석은 생략하고 난간석을 둘렀으며, 다른 왕릉과는 조금 다르게 석주가 아닌 동자석 상단부에 십이간지를 글자로 새겨 놓았다.

 

문석인(文人石)은 공복(公服)에 복두(幞頭)를 쓰고 있으며, 두 손으로 홀(笏)을 쥐고 있다. 홀은 신하가 임금을 대면 할 때 손에 쥐는 흰색의 상아 또는 나무 막대이다. 뒷면의 관대에는 꽃문양이 보인다. 얼굴에는 미소를 띠고 있어 표정이 살아 있다. 짧은 목에 얼굴을 앞으로 내밀어 턱을 홀 바로 위에 올려 놓은 형상이다.

 

무석인(武人石)은 투구에 있는 상모를 뒤로 넘겼다. 갑옷의 어깨 부분에는 아주 작은 도깨비 문양을 넣었고, 소매는 활동하기에 편리하도록 터져 있다. 흉갑 부분은 구름으로 장식되어 있다. 대부분의 석물이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 왕릉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인경왕묘 석물은 화려하다. 그래도 왕후의 릉 석물이라고 이해할만하다. 그러나 이렇게 호화로운 석물을 세우고 싶은 마음은 왕이나 왕비만이 아니다. 신하도 호화 석물을 세우려 했고, 일반 백성도 돈만 있으면 호화롭게 석물을 설치하고 있다. 아름다운 우리 강산이 여기 저기 호화 분묘이니 볼상 사납게 되었다. 겉으로 드러는 효 중에서 하나가 호화석물이 아닌가 본다.  

 

석등과 상석은 릉의 정면에 있다. 석등은 사방으로 창문이 있어 혼불(?)을 밝힐 수 있게 했다. 석등은 8각이고 꽃문양을 새겨 넣었다. 상석은 네 귀퉁이에 둥근 돌 위에 올려 놓았다. 상석은 본래 제사상을 차리는 곳이다.  

석물은 앞쪽에 석등을 배치하였고, 좌우로 문인석과 무인석을 배치하였다. 릉 둘레에는 12지상 석상을 배치하였다. 문인석과 무인석 옆에 있는 석상은 말로 보인다.

측면에서 본 문인석이다.  문인석 좌측에 석주가 있다.

뒤에서 본 문인석과 무인석이다.  

병풍석이 없이 둘레석만 있다.

무인석이다. 눈은 투어나왔고, 코는 크고 잎은 두툼하고 목은 짧아 힘이 있어 보인다.

문인석이다. 손에는 홀을 쥐고 공손하게 있는 모습니다. 인상이 편안하고 인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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