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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山金氏 이야기

열녀 양천허씨 이야기

by 仲林堂 김용헌 2014. 9. 3.

열녀 양천 허씨(陽川許氏) 이야기

 

열녀 양천 허씨(陽川許氏)는 충청도 관찰사 김약채(金若采)의 아들 김문(金問)의 부인이다. 양천 허씨는 대사헌 허응(許應)의 딸이다. 허응은 고려 후기 과거에 합격하여 사대부 가문으로 조선건국과 사회개혁을 주도하던 인물이다. 허응과 김약채는 이색의 문하생이었다. 김문(1373-1393)은 태조 1(1392) 20세에 을과에 3등으로 합격하여 사초를 기록하는 예문관 검열이 되었다. 그러나 그 다음해 태조 2(1393)에 병을 얻어 21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고, 양천허씨는 유복자를 둔 청상과부가 되었다.

 

연산에는 허씨 부인에 관한 이야기가 구전되어 내려오고 있다. 양천허씨는 17세의 나이로 과부가 되자 아버지께서 개가시키려 하였으나 이를 거절하고 개성에서 시집인 연산으로 친정 몰래 어린 아들을 업고 몸종 하나만 데리고 말만 듣던 충청도 연산 땅 시댁을 찾아 나섰다. 몸종이 얻어다 주는 죽과 보리밥으로 주린 배를 채우며 걷고 또 걸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되었다. 그 때 큰 호랑이가 나타나 길을 인도하여 연산 땅 김 관찰사가 사는 동내까지 와서는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마을을 범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허씨 부인은 연산 거정에 도착하여 시부모님께 인사를 하자 시아버지가 친정으로 돌아가라며 내쫒았다. 허씨 부인은 그냥 돌아가지 않고 집에서 얼마 안 떨어진 앞 산 기슭에 움막을 짓고 거기서 어린 아들과 함께 거처하였다. 초겨울 날씨가 춥던 어느 날밤 눈이 크게 내렸다. 아침 일찍 일어난 시어머니는 혹시나 며느리인 허씨와 어린 손자가 추위에 어찌 되었을 가 걱정이 되어 하인에게 움막에 가보라고 했다. 하인이 움막에 와 보니 눈은 하나도 없고 온기가 감싸고 있었습니다. 하인이 이를 보고 하자, 시어머니는 관찰사공 남편에게 이는 조상의 보호라고 설득하여 관찰사공은 며느리를 집으로 들어오라고 허락을 하였다.

 

그 후 연산 시댁에서 허씨 부인은 유복자 김철산을 훌륭히 길러 냈다. 김철산은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았고 사람들과 서로 비교하지 않았으며 좋고 나쁜 일을 들어내지 않아 사람들이 다 숨은덕이라고 칭찬했다. 관직은 사헌부 감찰에 머물렀다. 김철산은 김국광(金國光), 김겸광(金謙光), 김정광(金廷光), 김경광(金景光) 4명의 아들을 두었다. 이 중 3명이 문과에 급제하였다. 김국광은 좌의정에 올랐고 좌리공신에 책록되었고 광산부원군과 광성군에 봉해졌다. 김겸광은 평안도관찰사를 역임하였고 호조참판, 예조판서가 되었고 좌리공신으로 광성군에 봉해젔다. 김경광은 허씨 할머니와 어머니 안동김씨의 상을 마치고 53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군기사정겸 교서관 판교를 지냈다. 증손자부터 자손은 많이 번성하였으며 하나 같이 훌륭했다. 후손 중 사계 김장생은 7대손이고, 신독재 김집은 8대손이다.

 

허씨부인의 절행은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 허씨수절(許氏守節)”이란 제목에 글과 함께 그림으로 나와 있다. 허씨부인의 절행은 세종2년에 조정에 알려져 정려의 명이 내려졌다. 열녀로 명하게 된 것은 남편의 3년상을 마치고 개가하지 않으면서 시부모를 봉행했다는 것이다. 정려각(旌閭閣)은 지금도 연산면 고정리 마을 앞에 있다.

 

허씨부인은 1455년 집에서 돌아가셨다. 그 때 향년이 얼마인지 확실치는 않으나 아들인 감찰공의 생졸년을 기준으로 미뤄 보면 78세 아니면 79세로 보고 있다.

 

8대손 신독재는 허씨할머니 비문에 다음과 같이 새겨 넣었다. “! 쓰러진 나무에도 새 움이 돋는 법인데 하물며 덕을 쌓고 행실을 가다듬기를 보통사람보다 백배나 천배나 하신 우리 선조비께서 오래 수를 누리신 것은 당연하겠다 하겠고, 거의 끊어질 뻔했던 세대도 마치 북채에 북소리가 상응하듯이 그리고 형상이나 소리에 그림자나 메아리가 따르듯이 다시 번창하게 되어 끼쳐 준 은덕의 보답을 받아 누리고 있으니, 선행에는 복이 따른다는 그 이치란 과연 속일 수가 없는 것이라 했다”.

 

충남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양천허씨 정려

 

節婦 藝文館 檢閱 贈 議政府 左贊成 金問 妻 贈 貞敬夫人 陽川許氏之 閭

절부 예문관 검열 증 의정부 좌찬성 김문 처 증 경경부인 양천허씨지 려

 

풀이하면

절부인 예문관 검열이었고, 의정부 좌찬성으로 증직받은 김문의 처, 경경부인으로 증직받은 양천허씨의 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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