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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공연

2022년 수원화성 능행차 비내리는 날씨에 재현(1)

by 仲林堂 김용헌 2022. 10. 10.

정조는 1789년(정조 13) 천하의 명당지라는 화산(花山) 아래에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顯隆園)을 조성한 이후 매년 수원으로 행차하여 현릉원을 참배했다. 을미년(1795년) 행차에는 특별한 점이 있었다. 그동안은 2박 3일 정도의 행차였지만 그 해 행차는 7박 8일로 늘어났고, 처음으로 혜경궁을 모시고 행차했으며, 화성행궁에서 회갑잔치를 벌렸다. 정조 일행은 윤 2월 10일 시흥행궁을 출발하여 화성행궁에서 숙박했다. 그 다음날 11일은 수원향교 대성전을 참배하고 낙남헌에서 문무과 시험을 참관했다. 12일에는 혜경궁을 모시고 현륭원을 참배했다. 행궁으로 돌아온 정조는 오수에 서장대에 올라 이튼날 새벽까지 군사훈련인 야조를 참관했다. 13일은 봉수당에서 진찬이 거행되었다. 14일에는 신풍루에서 백성에게 쌀을 나눠주고 굶주린 백성에게는 죽을 제공했다. 이어 낙남헌에서 양로연을 거행했다. 15일은 서울로 가는 귀로에 올라 시흥행궁에서 숙박을 했다. 16일 시흥을 출발하여 창덕궁으로 돌아왔다. 그 때 행사를 그림으로 그린 「화성원행반차도」에 나오는 인물이 6,343명이고, 말 1,481필이다. 실제는 수행원 1,772명, 말 786필로 알려졌다.

 

수원화성문화재에서는 정조가 을미년에 수원에서 벌렸던 잔치를 재현하고 있다. 그 당시 규모로 재현은 어렵지만 그 해 행사 중에서 야조, 봉수당 진찬(회갑연), 낙남헌에서 양로연, 한시백일장을 통해 과거시험, 능행차 등을 재현하고 있다. 여러 사 중 가장 큰 행사가 능행차이다. 능행차에는 수천명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고, 그 행차하는 거리가 서울에서 수원까지로 여러 지역을 통과해야 한다. 

 

올해 화성능행차는 서울 창덕궁에서 화성 융건릉까지  총 59.2㎞ 중 43.5㎞를 재현한다. 수원구간은 10월 9일  지지대고개에서 화성행궁까지에서 있었다. 능행차 선두는 장안문을 16시경에 통과했다. 장안문 안쪽에서 관람했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로 인하여 중단했고, 3년만에 재개하는 큰 잔치로 준비를 많이 했으나, 이날 왼 종일 비가 내려 행사에 큰 차질이 있었다. 행차가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없었다. 복장은 우비를 썼고, 북이나 장구 등 타악기는 비닐로 싸매서 소리가 정상적으로 날 수 없었다. 또 하나는 수 많은 출연자가 을미년 능행차를 했다고 하나 행렬을 알리는 현수막이 거의 없어 어떤 행렬이 지나는 가? 알 수 없었다.

 

2017년 능행차에는 경기감사, 훈련대장, 금군별장, 정리사, 혜경궁홍씨 보마, 청선군주와 청연공주 가마, 병조판서, 경기감사, 정가교, 수라가자 등 현수막이 있어 알 수 있었다.

 

금년 능행차는 2017년 능행차에 비하여 간략하였다. 그 순서는 현수막이 없어 확실치 않으나 짐작해 보면 사물놀이팀, 취타대, 왕의 친위부대인 금조별장, 삼지창 부대, 곤봉부대, 조총부대, 깃발 부대, 어보마(임금이 타는 말), 수어사, 장용영사명, 어보마(국새를 실은 말), 임금 호위병 부대, 깃발 부대, 혜경궁 가마, 청성공주와 청연공주(정조의 누나) 가마, 취타대, 외인부대, 관광어차 순이었다. 

 

사진이 많아 전편은 선두부터 정조 일행 행차까지, 후편은 혜경궁 행차부터 마지막까지로 나눴다.

하나라고 쓴 깃발 뒤에 많은 사물놀이패가 따르고 있다.
백여명이나 되는 사물놀이팀이다. 흥을 돋구고 있다. 아쉬운 것은 비만 없었다면 얼마나 좋았을 가?이다.
장구에 비닐을 싸 맸다.
능행차를 알리는 현수막 앞에서 기마병이 대열을 이끌고 있다. 아마 경기감사가로 추정된다.
정조대왕화산능행차란 현수막이다.
취타대이다.
왕을 호위하는 호위병이다. 선두가 경기감사 일가 아니면 금군별장인가?
삼지창을 둔 병사가 지나고 있다.
창을 든 병사이다.
말을 탄 장수다.
조총을 든 병사들이다.
좌측에 말을 탄 사람은 모자에 빨간 수술이 있고, 소매는 붉은 색이고, 바지는 황색으로 장군으로 보인다.
뒤에 월도를 병사가 보인다.
백마를 탄 장군이다.
어보마(御寶馬)깃발이다. 어보마는 왕권을 상징하는 국새를 실은 말이란 뜻이다. 그런데 현수막 뒤에 국새를 실은 말이 있어야 하나 어찌된 영문인지  말이 없다. 깃발을 가지고 가는 사람도 연출하는 사람도 어보마라는 뜻을 모르는 것 같다.

 

창을 든 병사가 많다.
창을 든 병사, 조총을 든 병사, 깃발을 든 병사, 뒤죽박죽이라 알 수 없다.
한동안 행렬이 끊어졌다. 도로 양편에 비가 와도 능행차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이 왔다.
다음 행렬은 장용영부대이다. 왕의 친위부대라고 할 수 있는 장용영 부대가 정조 임금을 앞에서 호위하고 있다.
이 사진의 우측끝에 임금을 상징하는 용기가 보인다.
조총 호위병 뒤에 임금이 탄 어가가 보인다.
어가는 모두 노란 제복을 잎은 병사들이 끌고 있다. 좌우에 호위병이 있다. 이번 행차는 정조가 가마 속에 있어 보이지 않았다. 다른 해에는 정조는 갑옷을 입고 걸어서 행차를 했다.
어가 뒤에 따라오는 군사들이다.
각종 깃발이 보인다.
이 깃발은 화성원행반차도에 보면 그 이름이 나와 있다.
비만 오지 않았으면 능행차에 참여하는 출연자도 신이 났을 텐데, 아쉽다.

 

노란 우비를 입어 볼품 없다.
아무 것도 들지 않은 병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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