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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중국(구채구, 황룡)

중국 청두에서 구채구까지 여정

by 仲林堂 김용헌 2021. 10. 18.

청뚜에서 구채구 가는 길은 민강을 따라 첩첩산중으로 들어 간다. 내 생전 이렇게 험한 길은 처음이었다. 청뚜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구채구 가는 길 목에서 팬다곰 공원을 들렸다. 가는 비가 반갑지 않게 내리고 있었다. 한가롭게 노니는 팬더곰을 30분 가량 구경한 후 오전 10시반부터 버스는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는 버스 차창을 통하여 찍은 사진이고, 날씨는 흐리고 사진 기술도 부족해 좋지 않으나 하나의 하나의 기행문으로 보고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위 지도에 나와 있는 청뚜에서 구채구까지는 문천이 아마 반쯤 가는 거리가 될 성 싶다.

팬다곰 공원에서부터 천만 인구의 상수원인 도강은시의 큰 호수를 지나 긴 터널까지는 고속도로이다. 그러나 차는 교통체증으로 인하여 멈췄다 서다 한다. 이곳은 교통이 막히면 서행이 아니라 5분이나 10분간 차가 그냥 스톱이다. 풀리면 서행을 하고 또 스톱을 하여 좀 특이하였다. 빗길이고 차량이 많아 교통경찰이 터널 입구에서 일정 차량만 통과시키는 것 같았다. 너무 오래 막히다 보니 역주행 하는 차도 보이는 등 무질서가 바로 중국이란 말이 실감이 났다.

 

우리 일행이 탄 버스는 37인승으로 13명의 우리 일행과 가이드가 탔다. 승객수에 비하여 차가 컸다.

도강은시에서 큰 터널을 빠저 나온 후부터는 막히는 곳은 없었으나 길은 험준한 산속으로 들어 간다. 너무 산이 험하다 보니 길은 강을 따라 만들은 듯 보였다. 이곳부터 3년전 쓰찬성 대지진 피해가 있었던 현장으로 문천이란 곳에 접어 들자 지진의 피해가 심했다. 이곳 주택의 85%는 피해를 받았다고 한다. 본래 있던 길은 지진 피해로 산에서 내려온 모래, 자갈, 바위로 길은 없어지고 다리는 끊겼으나 복구를 못하고 새로 길을 낸 곳이 많았다. 지난 대지진으로 10만명이 죽었다고 한다. 문천은 진앙지에서 가까운 곳이지만 가장 피해가 심한 곳은 도강은시, 북청이라고 한다.

 

이곳 산은 젊은 10대와 같은 모습으로 거칠고 힘이 넘치는 듯 했다. 언제 튈지 모르는 이런 산에서 지진이 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산은 늙은 산으로 경사가 완만하여 보기에도 순하듯 보이나 이곳 산은 다듬지 않은 채 제멋대였다.

 

도강은시를 지나 드물게 가옥이 보인다. 그런데 이들 가옥에는 하나 같이 양 머리 그림을 그려 놓았다. 경상대 하영삼교수의 글을 보면 "羌(姜·종족 이름 강)은 원래 양(羊)을 치며 토템으로 삼아 살던 중국 서북쪽 사람(인·인)들을, 養(기를 양)은 양(羊)을 먹여(食·사) ‘기르는’ 모습을 그렸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의 성씨는 모두 姜씨로 강자는 羊아래에 계집 女자가 있다. 경작할 수 있는 농토가 전혀 없으니 높은 산에서 양을 치며 살 수 밖에 없으며 양이 먹고 입는 것을 해주는 삶을 이어 나갈 수 있게 양의 숭배는 당연하게 된 것이 아닐 가 생각해 본다.

버스에서 밖에 보이는 것은 높은 산뿐이다. 고개를 들어야 산 위를 볼 수 있다. 산에는 돌 천지이고 나무도 거의 없으며 관목과 풀만 조금 있을 뿐이다. 산 중턱을 보면 사람의 흔적이 보였다. 처음에는 농토가 전혀 없으니 저 높은 곳에서 농사를 짓는 구나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고 산사태 방지를 위하여 사방사업을 한 흔적이었다.

 

이곳이 마오시얀 (무현)이란 곳이다. 보이는 강은 민강이다. 물살이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마오시얀은 청뚜에서 구채구간에서 가장 큰 도시라고 한다. 이곳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고속도를 빠져 나오자 차는 밀리지 않으나 차창밖에 보이는 산은 높으며 험한 돌산이다. 교통체증으로 예약을 한 마오시얀에 있는 식당에는 오후 4시가 다 되어 도착했다.

현지식으로 점심식사를 한 후 오후 4시40분에 출발하여 다시 달렸다. 오후 5시 50분에 화장실 들릴 겸해서 과일 가게가 있는 간이 휴게소에 들렸다. 대추, 사과, 호두, 군밤을 팔고 있었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장사로 가이드가 끼어서 그런지 가격이 우리나라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비쌌다.

 

지진 피해로 건물은 모두 새로 지은 듯 했다. 머리에 히잡(이스람 여인이 머리에 쓰는 베일)을 쓴 여인이 보인다. 이곳은 이스람 문명권이 미치는 곳이다.

남자가 흰 두건을 쓴 사람들이 흔하게 보인다. 이 사람들은 이스람을 믿는 묘족이다.

 

문성공주가 이곳으로 시집오면서 두 나라가 평화가 왔다는 송판에 도착한 것은 19시 20분이다. 송판 고성이 보인다. 예전이름은 송주라고 한다.

 

고개를 지그재그로 넘었지만 이렇게 산 위로 오르는 길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터널을 통과 했다. 이런 길이 없었을 때는 어떻게 이곳에 접근할 수 있을 가? 이 도로가 나기 전에는 구채구는 거의 외부와 단절된 곳이 아닐 가 생각이 들었다.

오성기가 집집마다 걸려있다. 한족이 아닌 소수민족이면서도 중국정부에 감사 표시일 가 아니면 하나의 제스처일 가 모르지만 근래에 무척이나 살기가 좋아진 것 같다. 대부분의 집들이 새로 지은 집이다.

 

구채구에 가까워 올 수록 티벳족의 마을이 많이 나타난다. 티벳은 쓰찬성과 아주 먼 거리이지만 본래 이곳도 티벳이 지배하던 땅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침 7시에 호텔에서 나와 펜더곰 공원을 들렀지만 구채구 호텔에 도착하니 밤 8시40분이다. 거의 12시간이 걸렸다. 구채구 가는 길은 구채구황룡 공항이 있어 비행기를 타고 가면 쉽게 접근 할 수 있도 있다. 버스를 타고 가면 험한 산길을 넘는 여정으로 힘은 들지만 그래도 이것 저것 볼 거리가 있어 여행의 즐거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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