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제534호 원각국사비는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영국사 비석이다. 이 비석은 남쪽으로 약 100미터 떨어져 있었다. 당시 영국사가 이 비석이 있는 곳까지라고 생각할 때 영국사의 규모가 아주 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민족문화백과사진에 다음과 같이 원각국사에 대하여 기재하고 있다. "전체 높이 371㎝, 비신 높이 165㎝, 너비 78㎝, 두께 13㎝. 현재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는 전하나, 점판암의 비신은 아랫부분이 결실되어 있으며 훼손이 심하다. 원각국사는 어려서 출가하여 선사·대선사가 되었던 명승으로, 1174년(명종 4)에 입적하자, 왕은 그의 유해를 영국사에 안치하였다. 비문에는 찬자(撰者)·서자(書者)와 건립 연대가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동국여지승람』과 『대동금석서』에 의하면 찬자는 한문준(韓文俊)이며 건립 연대는 1180년이다.
건립연대가 1180년이니, 지금으로부터 844년 전에 세운 비석으로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비신은 많이 손상되어 있었다. 비석의 머리에 해당하는 이수(螭首)는 비신 위에서 떨어져 귀부 뒤에 놓았다. 비신의 두께는 아주 얇아 큰 이수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것 같다. 비문(碑文)은 정면으로 보면 잘 보이지 않았으나 비스듬하게 보면 글자가 흐리게 보였다. 비각이 없었던 비문은 비바람에 많이 마모되어 있었다. 원래 비각은 없었으나 근래에 세웠다고 했다.
원각국사비와 비각이다. 이 비석은 영국사로부터 약 500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비석의 둘레에 창살이 촘촘하게 있어 카메라로는 비석을 촬영을 할 수 없었다.
휴대폰을 창살 안쪽으로 넣고 이 비석의 뒤편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비신과 비석의 받침에 해당하는 귀부(龜趺)가 보인다. 비문을 적은 비신(碑身)의 아래 부분이 떨어져 나가 없다.
비석의 머리에 해당하는 이수(螭首)이다. 이수는 비신 위에 올려져 있는 것이 아니라 비석의 후면에 땅에 떨어져 있었다.
옆에서 촬영한 귀부(龜趺)사진이다. 거북이 모양의 귀부가 잘 드러난다.
정면에서 본 비석이다.
정면에서 본 사진으로 비신에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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