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향교 유림 일행과 함께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노문리 이항로 선생의 유적지를 탐방했다. 이곳은 선생이 태어난 생가이며 후학을 가르친 청화정사(靑華精舍), 선생의 위패를 모신 노산사(盧山祠), 선생의 유품을 보관한 화서기념관(華西記念館)이 있다.
우리 일행은 양근향교에서 봉심을 한 후에 청화정사를 찾았다. 양평향교에서 청화정사 가는 길은 한강변을 따라 갈 수도 있었지만 지름길로 가려고 했는지 알 수 없으나 해발 350미터 높이의 명달고개를 넘어 갔다. 송중섭 유도회장이 화서학회에서 발간한 화서학맥도를 배부했다. 이 학맥도를 보면 직접 가르친 사람이 수백명이다. 어떻게 이 깊은 산중에서 수 많은 제자를 길러 낼 수 있었을 가 놀랍기 그지 없다. 중암 김평묵, 면암 최익현, 의암 유인석, 성제 유중교, 하거 양헌수 등의 그의 직접 제자이고, 그리고 제2세, 3세 제자들은 항일 독립운동의 중심을 이뤘다. 화서기념관에 게시한 '화서학파의 민족운동 분포도'에 총 679명이 그의 학맥에 속한 사람이고 그 중에서 독립유공자가 233명이고 순국순절자가 103명이다. 다시 한번 화서 선생의 의리(義理) 선비 정신이 우리 독립 쟁취에 밑거름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 일행을 화서선생의 후손인 이록기 선생이 안내해주고 유물을 설명해줬다.
화서 이항로 선생의 유품을 전시한 화서기념관이다.
화서기념관 앞에서 이록기 선생이 일행을 맞아 주고 있다.
화서 이항로 선생의 년도별 활동 내역인 연보이다.
화서 선생이 통정대부 승정원 동부승지 겸 경연참찬관으로 임명 받은 교지이다. 그는 비록 과거에 응시하러 갔다 부정시험을 알고 포기했다. 비록 과거에 합격하지는 않았으나 추천에 의해서 동부승지에 임명되었다.
이항로 선생의 아버지인 이회장이 가선대부 예조참판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부총관에 증직(돌아가신 후 받은 벼슬) 받은 교지이다.
이항로의 조부(?) 이성복이 통정대부 예조참의에 증직받은 교지이다.
광제헌(光齊軒) 현판이다.
이항로 선생의 초상화이다.
이항로 선생이 직접 쓴 일하정(一何亭)의 현판이다. 일하정은 경남 거창군 가조면 동례리에 있다.
좌측은 일감제도(一鑑齋圖)의 도면이다. 우측은 읍내댁이 조곡 2석 10월 27일 등 메모한 메모장이다.
일하정 정자에 걸린 현판 글이다.
화서선생의 저서 家庭拾錄(가정십록)이다.
아언(雅言) 천, 지, 인 3권이다. 훌륭한 인물인 성왕, 요임금, 순임금 등의 좋은 말씀을 기록한 책이다.
화서선생의 문집 화서집(華西集)이다.
좌측 소매가 덮는 심의 좌임도와 우측소매가 덮는 심의 우임도이다.
제자들이 만든 강수계 내역 책자이다.
화서 선생의 친필로 충으로 임금을 섬기자는 事君以忠이다.
노산대(盧山臺) 암각글씨이다.
금강산에 암각한 선생의 글씨 주경집의(主敬集義)이다. 주경집의는 선생께서 의로움을 실천하자는 글이다. 이 정신이 항일운동의 뿌리가 되었다.
화서학맥에 속하는 사람이 총 679명이고, 그 중 233명이 독립유공자이고, 순국순절자가 103명이다.
노산8경 안내 간판이다.
화옹정 안내간판이다.
우리 일행을 해설해주신 분이 유건을 쓴 이록기 선생이다. 좌측에는 우리 일행을 양근향교에서 화서기념관까지 안내해 주신 양근향교 조찬희 원임 전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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