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와 가족 이야기

運과 德潤身(2002년 1월 4일)

by 仲林堂 김용헌 2017. 7. 10.



힘이 센 사람 보다 똑똑한 사람이

똑똑한 사람 보다 덕이 있는 사람이

덕이 있는 사람 보다 운이 좋은 사람이 위에 있다고 한다.

그러면 나는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일 가 뒤돌아본다.


 한 평생 동안 3번의 기회가 온다고 했다. 난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군대를 갔다 와 늦게 제대를 했다. 군 제대를 1976년 2월26일하고 나서  3월 중순 취직 시험 공부 차 친구 따라 서울로 올라  왔다. 그 때 컴퓨터가 처음 나왔을 때로 친구는 컴퓨터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친구와 같이 있으며  종로 가회동의 한 독서실에서 시험 공부를 했다. 서울에 올라 온지 며칠만에 농업연구직 시험 공고가 붙었다. 한 달 조금 시험공부를 하고 나서 25:1의 경쟁을 뚫은 것은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다. 그 때 내가 고향에 있었다면 아마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을 것이다. 독서실의 분위기가 아주 좋아 집중하여 단기간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이 내겐 큰 행운이었다.


 공무원으로 들어 와서 또 하나의 관문은 "관"자를 다는 것이었다. 농업연구직에는 농업연구관과 농업연구사로 구분되어 연구관은 1-5급 상당이며, 연구사는 6-7급 상당으로 연구관 관문을 통과가 싶지 않다. 먼저 시험에 추천 받기가 싶지 않다. 정원 20명인 한 개과에서 1년간 1명 정도 추천을 받으며, 5배수 추천을 받아 1명을 주관식 시험을 보아 선발한다. 즉 5:1의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시험에 추천 받기 전 1991년도 내 앞에 있는 사람이 3명이 있었다. 이 사람들이 한 해에 모두 추천을 받기가 쉽지 않으며, 또 3사람이 한번에 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들 3사람이 그 해 모두 시험에 합격을 했던 것이다. 이들 3사람에게도 행운이었지만 내게도 행운이었다. 정말 난 그 때 운이 좋았다. 만약 그 세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안 되었다면 추천을 받기 어려웠었다. 그 다음 해 난 승진시험 추천을 받았으며, 정말 운 좋게 5:1의 경쟁을 뚫은 것이다.


그리고 나서 이제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한번 연구관 승진이 되고 나면 다른 승진은 없으나 보직을 받는 것이 승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기회가 왔으나 운이 닿지 않았다. 학위, 업적, 경력 등 내가 할 일은 다 해 놓았으나 승진이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세상을 탓하고 싶으나 운으로 돌리면 마음이 편할 것 같다.


 나는 덤으로 자식에게서 또 하나의 행운을 얻었다. 큰아들은 공부를 잘 하는 편이었으나 1996년 대입에서 실패를 하고 재수를 했다. 재수를 하면서도 방황을 하고 공부를 하지 않아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어려운 문제는 잘 풀며, 특히 본 고사 문제는 잘 풀었다. 천만 다행으로 그 해 수능은 정말 어려웠다. 아들의 점수는 정말 행운의 점수로 333.3 점이었다. 전국 이과 석차 680등으로 생각 치도 못한 석차였다. 그 해 수능이 어렵게 나와 좋은 석차를 얻은 것은 정말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비록 더 높은 곳으로 가지는 못했지만

촌사람으로 이곳까지 오면서

3번의 기회 중 2번은 살리었으나 한번은 실패했다.

그리고 덤으로 아들에게서 하나의 운을 얻었다.

이 정도면

난 운이 좋은 편이 아닌가 생각 해본다.


그러면 과연 운은 어디에서 올 가

친구인 야천 이동 선생이 5년 전쯤 경기도문화예술회관에서 서예전시회를 하고 나서 전시품을 받았다. 德潤身 3글자로 길이가 1.6m, 폭이 70cm 크기의 큰 표구 이었다. 덕으로 몸을 닦아라는 글귀다. 이 표구는 지금도 거실에 걸려 있다. 덕윤신 표구를 받은 것은 우연이었으나, 그렇게 살르려고 했다.

힘 보다 센 덕으로부터 운이 나온다고...

그러나

난 아직 덕윤신이 부족하였으며 운은 더 이상 따르지 않았다.

아니면 더 이상은 욕심인가?

아니면 내 어지러운 세상에서 어찌 덕을 찾는단 말인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