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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山金氏 판교공파

광산김씨판교공파 종중 묘역 답사를 다녀와서

by 仲林堂 김용헌 2016. 9. 10.


판교공파 종원이 연산면 고정리 양천허씨할머니, 감찰공, 성균관진사공, 사계선생 묘소에 참배한 후 허씨할머니 묘소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고정리 사계묘역 좌측 날등에 있는 참교공, 좌승지공, 통덕랑공에 참배한 후 좌승지공 묘소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계룡시 농소리 개령현감공 묘소에 참배한 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상두리 아산현감공 단소에 참배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아산공 단소 아래에 있는 애국지사 김용창선생 동상이다.



경기도 의왕시 포일동 산 68 판교공 묘소에 참배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복궁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회루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무릎을 다쳐 지팡이를 짚고 있는 기중 일가를 논산역에서 만났다. 올해 일흔 하나인 기중 일가는 전북 익산군 금마면에서 양파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몸이 불편하면서도 다른 일 접어 두고 나오신 일가를 보니 반갑고 더욱 고마웠다. 요즘 사람들은 시간이 돈이라 돈 되는 일이 아니면 관심이 없다. 경쟁이 치열하고 삶에 여유가 없어 여행도 사양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종사도 예전 같지 못하다. 근래 핵가족화 하고 교통이 발달해 집성촌이 많지 않고 친족 간에도 멀리 떨어져 살아 서로 보기 쉽지 않다. 자주 만나야 친해지고 친해야 정도 들며 서로 도움 주며 살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다.


  한 가족이 세대를 거듭하여 지나면 하나의 큰 가문이 되며 이렇게 하여 하나의 종중이 된다. 종중 일가의 만남은 일 년에 한번 지내는 제사인 세일사(歲一祀) 때이나 바쁘고 사는 곳이 멀어 참석이 어렵다. 우리는 오랫동안 동방예의지국으로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사례(四禮)를 잘 지켜 왔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예절은 사라지고 있으나 사례(四禮) 중 그래도 남아 있는 것이 제사 의식인 제례(祭禮). 제사는 돌아가신 분에게 술과 음식을 올리는 것이지만 실제는 살아 있는 가족끼리 제사를 통해 만나도록 한 조상의 기막힌 지혜로 앞으로도 쉼 없이 이어내려 가야할 훌륭한 전통인 것이다. 묘소 참배는 제례 중 하나의 의식이라고 할 수 있으며 돌아가신 분에 대한 효()이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한 가족이 한 자리에 혈족간의 만남은 어른을 섬기는 일인 제()이다. 공자님께서 논어 학이편에서 인()을 행하는 근본은 효()과 제()라고 했다(孝悌也者 其爲仁之本與). 친족 간의 만남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효제(孝悌)를 실천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종중모임은 성종 11(1480) 문과에 급제하고 교서관 판교를 지내신 판교공(金景光)의 후손의 모임인 광산김씨판교공파종중(회장/도유사 容憲) 조상 묘소 답사다. 판교공의 큰 형님은 의정공 김국광(金國光)이고, 둘째 형님은 공안공 김겸광(金謙光)이다. 많이 일가가 참석할 수 있게 종중에서 모든 비용을 부담했다.

 

  이번 답사는 전세버스를 이용하였으며, 98일 논산역에서 첫 번째 영암, 부여, 논산 일가가 합승했고, 두번째 천안IC에서 천안, 청주, 성환 일가 합승했고, 세 번째 화성시 향남면에서 화성 일가가 합승했고, 네번째 의왕시 포일동에서 서울 일가가 합승하여 서울까지 왔다 역순으로 논산까지 돌아 일정이었다.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판교공의 선조와 후손 묘소를 맨 먼저 참배했다. 고정리 사계 김장생 묘역에는 판교공의 선친 두 분과 손자 네 분의 묘가 있다. 손자 네 분의 묘 중 한 분은 사계 묘소 바로 아래에 있고, 다른 세 분은 사계 묘역 좌측 날등에 있다. 판교공의 할머니 양천허씨와 아버지 감찰공(鐵山) 묘소에 먼저 참배했고사계 김장생 선생 묘소에 참배했다. 그 후 판교공의 손자(참교공: 方胤), 증손자(성균관진사공: 廷秀), 고손자(좌승지공: 善輝), 5대손자 (통덕랑공: 宗吉) 묘소에 참배했다. 사계 선생 묘 바로 아래에 있는 성균관진사공의 비문에 "사림 종사(爲士林 宗師)"란 글귀를 보면서 우리들은 자긍심을 갔었다.

 

  두 번째 방문지는 계룡시 농소리에 있는 판교공의 큰 아들인 개령현감공(克忻) 묘소였다. 잘 조성한 돌계단을 오르자 시야가 탁 터진 곳에 묘가 자리하고 있다. 누가 봐도 명당이라고 할 만한 풍광이 좋은 곳이다. 참배 후 많은 여정이라서 서둘러 계룡시에 있는 한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려 천안IC 앞 만남의광장에서 천안, 전의, 성환 일가를 만났다.

 

  세번째 방문지는 화성시 향남면 상두리에 있는 판교공의 둘째 아들 아산현감공 (金克懽) 단소에 참배 이었다. 현감공에 참배 후 바로 아래에 있는 애국지사 김용창(金容昶) 선생 석상(石像)에 묵념을 했다. 김용창 선생은 애국지사로 덕수상고 학생으로 일제에 항거 독립운동을 하다 고문으로 옥사를 했다.

 

  네 번째 방문지는 의왕시 포일동 산 68 판교공 묘소였다. 일중 차종손, 용오 부회장, 인수 이사 등이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후손 모두는 판교공(金景光) 묘소에 참배했다. 한 핏줄에서 나온 여러 후손이 한자리에 만나 절을 올리니 돌아가신 선조께서도 기뻤을 것이며 이 자라에 모인 후손 또한 살아서 선조의 음덕을 받으면서 기쁘지 아니 할 수 없다. 배례 후 용헌 회장이 먼저 인사말을 했고, 이어서 영문 부회장, 용오 부회장, 용무 부회장이 인사말을 했다. 그 후 회장은 비문을 참석자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인근에 있는 판교공의 재실인 경모재(景慕齋)를 방문하고 회장은 재실(齋室)과 종토에 관하여 간단한 설명을 했다.

 

참배를 마친 후 버스는 저녁식사와 숙소가 있는 여의도로 달렸다. 여의도에서 유명한 불고기 식당으로 알려진 창고43 여의도강변점에서 용학상무, 용덕 일가, KBS 탈랜트 경애 일가, 용구 일가, 영화배우 정수 일가 내외 등을 만났다. 식사 하며 술 마시고, 노래하며 흥겨운 시간을 가졌다. 여의도호텔에 여장을 푼 후 다시 2차로 소주를 기울이면서 일가 간 정을 새겼다.

 

  다음 날 99일 일행은 종중회관이 있는 서초구 방배동 2133에 도착하여 종중회관 사무실에 들려 커피 한잔 하며 단소를 나눈 후 경복궁에 도착했다. 회장은 비록 해설전문가는 아니지만 경복궁 해설을 했다. 관람을 마친 후 인사동에 있는 한정식 식당인 촌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했다. 영암일가는 용산역에서 KTX로 떠났고, 다른 지방에서 오신 분은 수원을 거쳐, 천안IC 정차 후 논산역까지 돌아갔다.

 

  처음 만난 일가도 있었지만 하룻밤을 같이 보내니 무척이나 가까워졌다. 가까운 친척이라도 자주 만나지 못하면 자주 만나는 이웃만 못하다는 이웃 사촌이란 말이 있다. 이번 종중 모임은 일가 간 만나자는 의미이다. 우리 종중 모임은 조상에 대한 숭조정신을 심었을 뿐만 아니라 일가 간에 서로 훈훈한 정을 가슴에 넣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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