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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일본 여행

일본 근대역사의 현장 오사카성 방문기

by 仲林堂 김용헌 2015. 9. 10.

오사카성 방문기

 

일본을 대표하는 성(城)이 오사카성이다. 이 성은 궁궐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성()이다. 또한 이곳은 봉건시대 일본에서 근대로 바뀌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사진에서 여러 번 보았지만 이번에 93일 처음으로 직접 보았다. 이 성의 남쪽에 있는 버스주차장에서 내려 처음 만난 것은 남쪽바깥해자(南城堀, southern hazard)이다. 중국의 만리장성이나 자금성 성벽도 보았지만 그 보다 잘 쌓은 성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찌나 성벽이 높고 견고하게 생겨 누구도 감히 접근하겠다는 생각조차 못할 것만 같다. 동쪽 바깥해자(東外堀, eastern hazard)도 남쪽해자 못지않았다.

 

성벽 위에 망루가 하나 있다. 이런 망루가 복원 전에는 성벽을 따라 여러 개가 있었다고 한다. 옥조구(玉造口)를 통해 바깥해자에서 안쪽 해자 쪽으로 들어오자 동쪽에는 안쪽해자(內堀)이 있고 남쪽으로는 마른해자(空堀)이 있다. 안쪽해자에서 궐문을 통과하니 거대한 타코석()이 앞을 가리고 있었다. 이 돌도 화산 폭발에 의하여 형성된 혼슈에서는 없는 돌이라고 한다. 어디에서 이 큰 돌을 캐 왔을 까? 미스테리다.

 

거석을 돌아 나오자 오사카성의 중심에 세운 8층 건물 천수각(天守閣)이 보인다. 천수각 겉모습은 옛 모습으로 복원하였지만, 내부는 1997년에 복원하여 승강기를 설치한 현대식 건물이다. 건물 진입 구에 우물이 하나 있고 1863년 철공 百濟淸次郞이 제조했다는 대포 한 대가 있다. 성이 백제라고 하니 백제에서 건너 온 도래 인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건물 입구에 있는 오사카성 천수각 게시판에는 다음과 같이 내용이 써져 있다.

 

등록유형문화재 大阪城天守閣

 

현재의 천수각은 소화6(1931) 많은 오사카 시민의 기부금에 의하여 "大阪夏陳圖 병풍"에 묘사된 풍신시대의 천수를 참고하여 세웠다. 우리나라 부흥 천수제1호이다. 초대 천수는 풍신수길이 대판 축성을 개시한 3년째인 1585년 완공되었으나 1615년 오사카 여름전투에서 소실되었다. 2번째 천수각은 덕천막부에 의하여 재건축 공사 중 1626년 현재의 장소에 축성되었으나 다시 1665년 벼락 이하여 불타 없어 졌다.

 

그 후 천수각이 없이 지내오다가 세 번째 천수각은 현재의 천수각으로 1931년 축성되었다. 이차대전 중 미군공습으로 소실되었다. 평성 9(1997) 복원되었다. 풍신수길 시대의 천수각은 현재 천수각보다 동쪽에 있으며, 높이는 약 40m이다.

 

건물은 외부에서 보면 5층이나 내부는 8층으로 되어 있다. 5층까지 승강기를 타고 올라갔고, 그 다음 전망대가 있는 8층까지는 걸어 올라갔다. 8층 전망대에서 오르니 시내 먼 곳까지 보였다. 지금은 대도시로 도시 전체를 볼 수 없었겠지만 천수각이 건설되었을 17세기에는 도시 전체를 감시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건물 내부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연보, 풍신수길과 오사카성, 오사카여름 전투 등 일본 역사 관련 유물이 많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4-1598)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쌓은 성이 바로 오사카성이다. 이 성을 거점으로 일본 통일을 이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의 주군인 오다노부나가(織田信長, 1534-1582)가 추진하던 일본통일 사업을 오다노부나가가 죽자 이어 받아 8년 만에 일본 국내 통일을 이룬다. 이로써 100년간 일본전국시대는 마감한다. 그는 일본을 넘어 중국을 치려하니 조선에게 길을 비켜 달라고 하여 마침내 임진왜란이 벌어진다. 그는 조선은 단숨에 먹고 중국을 치고 인도까지 치겠다는 거대한 야망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과 명의 저항으로 꿈을 이루지 못하고 1598년 사망한다. 그가 사망할 당시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는 겨우 6살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의 부하를 모아 놓고 어린 아들을 보살펴 줄 것을 부탁한다.

 

그의 다이묘(大名: 우두머리 부하) 중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2-1616)가 있었다. 도쿠가와는 에도(지금의 동경 근처)에서 영지(領地)로 삼으면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졌으나 바로 대결하지 않고 도요토미히데요시 밑으로 들어간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다른 다이묘(大名)는 조선 침약 후 세력이 약해졌으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신의 지역 통치가 잘 안 되었다는 이유로 임진왜란에 참전도 하지 않으며 세력을 키웠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심복인 이시다미쓰나리(石田三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이 죽은 지 2년이 되는 1600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죽이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출병한 틈을 타 세키가하라()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공격했다. 이 전투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 104,000명과 이시다 미쓰나리의 서군 85,000명이 싸운 전투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시다 미쓰나리가 자신을 죽이려 한 것을 미리 알아 차리고 대비를 했고, 전투는 동군이 승리를 한다. 이 전투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일본 최고의 권력자가 되어 영지를 재조정한다. 오사카성을 지키고 있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는 최고의 권력자에서 하나의 다이묘로 전락한다. 1603년 에도막부(江戶幕府)를 연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23살이 되던 해 161410월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20만 군대를 이끌고 오사카성을 침공한다. 도요토미 히데요리는 10만 병력으로 방어를 했다. 전투는 내성을 흙으로 메우기로 합의하고 전쟁은 끝났다. 그러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다음 해 1615430만 대군으로 오사카성을 침공하여 마침내 함락시킨다. 그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결하여 죽는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전쟁이 끝나자 병이 나 1616년 죽는다.

 

권력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세째 아들 도쿠가와 이데타다로 이어진다. 이로서 도요토미(豊臣) 가문의 시대는 끝나고 도쿠가와(德川) 가문의 에도시대가 열려 250년간 지속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쟁이 끝나고 에도시대 일본은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여 발전하게 된다.

 

일본은 임진왜란 전 100여 년간 끊임없이 전쟁을 하여 마침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통일을 한다. 그는 1585년 오사카성을 쌓고 7년 후 1592년 조선을 침공한다. 이번 여행에 오사카성의 해저드를 보면서 일본 역사를 배웠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힘을 느꼈다. 조선 통신사 김성일은 1590년 일본에 파견되어 이를 보지 못했을 가? 안타깝다. 민심을 고려하여 일본이 침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하였다고 하나 대책 없는 보고가 안타까울 뿐이다

버스주차장에서 오사카성 남쪽 바깥해저드와 제1번 망루이다.

 

바깥해저드에서 안쪽해저드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물이 있는 안쪽해저드이다.

 

물이 없는 안쪽해저드이다. 공굴(空堀)이라고 한다. 성벽 옆으로 가는 사람의 크기로 보면 이 성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아래 P(주차장)에서 내려 푸른 색으로 보이는 해저드 북쪽으로 올라 옥개구(玉造口)로 진입하여 안쪽해자(內堀)을 구경하고 현재지라고 쓰인 지도 간판이 있는 곳을 지나 중심에 있는 천수각(天守閣)으로 갔다.

 

성문 루문(樓門)이다.

성문을 통과하면 큰 바위가 앞을 막는다. 바로 들어 갈 수 없고 돌아서 들어 간다. 이 바위도 방어용으로 적이 침입할 때 한 출입구를 한 쪽으로 둬 공격과 방어가 쉽게 하였다.

 

이 건물이 오사카성 중심에 있는 천수각(天守閣)이다. 철옹성으로 하늘이 지켜주는 집이라고 부를 만하다. 겉은 5층 건물이나 내부는 8층으로 되어 있다.

이 대포가 천수각 입구에 있다. 이 간판에 이 대포는 철공 백제청차랑(百濟淸次郞)이 1863년 만들었다고 쓰어 있다.

 

오사카성 전망대에서 본 오사카 시내 빌딩이 보인다. 나무가 있는 녹색지역은 오사카성이다. 둥근 지붕은 실내 돔 오사카야구장이다.

 

풍신수길의 년보이다.

 

병풍에 그린 이시라미쓰나라의 서군 85,000명과 도꾸가와이에야스 동군 104,000명이 벌린 세키가하라 전투 장면이다. 이 전투는 단 하루만에 끝났지만 도꾸가와이에야스가 전 일본의 권력을 잡게 된 전투였다.

 

좌측에는 금으로 된 용머리이고 우측은 금으로 된 호랑이다. 용머리는 머리는 호랑이고 몸통은 물고기 모양으로 상상의 동물로 용마루에 있고, 호랑이는 5층 외벽 4면에 붙어 있다. 이 금으로 된 장식은 도요토미히데요시의 권력을 상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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