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월의 대표 시라고 할 수 있는 “나그네”는 그의 친구 조지훈이 지어 보낸 시 “완화삼(완花衫)”에 대한 답시(答詩)로 여러 곳이 친구 시 “완화삼”을 차용했다. 박목월은 자신의 대표 시가 친구의 시에서 따온 것이 많아 평생 부담스러워 했다. 조지훈의 “완화삼”은 또 자신이 지은 한시 “旅懷”에서 많은 부분을 따 왔다. “旅懷”도 확실치 않으나 옛 한시 “明月隋人同渡水 白雲送客獨歸山”와 닮은 곳이 많다.
좋은 집을 한 번에 만들기 어렵다. 벽돌 한 장 한 장이 쌓아 집이 되듯 좋은 벽돌을 모으고 갈고 닦아 하나하나 쌓아 가면 나중에 훌륭한 집을 질 수 있게 된다. 훌륭한 시도 좋은 시어(詩語)를 찾고 자신의 아이디어로 삼아 쌓아 가면 좋은 시를 창작할 수 있지 않나 박목월 시 나그네를 보면서 느낀다. 한시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旅懷”가 나오고, “旅懷”를 기반으로 “완화삼”이 탄생하고, “완화삼”으로부터 명시 “나그네”가 탄생했다고 생각 해 본다. “나그네”의 원조는 한시라고 할 수 있다. 한시는 시의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다른 사람의 시를 베낀다고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모방을 넘어 서야 할 것이다.
旅懷 조지훈
千里春光燕子歸 천리 봄빛에 제비 돌아오고
雲心水性動柴扉 구름 마음 물 성품에 사립문 움직인다 扉: 삽짝 비
苔封路石寒山雨 이끼 돋은 돌길에 찬 산비 내리고 苔: 이끼 태, 封:북돋우다
酒熟江村暖夕暈 술 익는 마을에 따듯한 석양 놀 暈: 무리 훈 (햇무리)
客窓殘燭思今古 여관 촛불 밑에서 어제 오늘 생각하네.
故國遺墟論是非 옛 나라 성터에서 시비를 논하니
多恨多情仍爲病 다정다한은 병이 되어 仍: 인할 잉
惜花愛月拂征衣 꽃을 아끼고 달을 사랑해 옷 떨치고 가네 拂: 떨 불, 떨치고 가다.
완화삼(玩花衫) ― 木月에게 조지훈
차운 산 바위 우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우름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 백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이냥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
나그네 ―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 芝薰 박목월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 백리
술 익는 마을 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조지훈은 3련에서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라 했다. 이 말은 한문으로 玩花衫이다. (玩)은 “가지고 놀다”, 화(花)는 꽃이고, 삼(衫)은 옷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아름다운 꽃 같은 그대와 인연이 되어 “이 밤 자면 꽃은 지리라” 우리네 인생도
꽃은 진다며 가는 세월을 아쉬워한다.
피천득은 다음과 같이 인연을 이야기했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 낸다“
明月隋人同渡水
밝은 달은 사람을 따라서 같이 물을 건너고
白雲送客獨歸山
흰구름은 나그네를 보내고 홀로 산으로 돌아가네.
밝은 달 아래 나그네가 물을 건널 때 물 속에 비춘 달은 나그네를 따라가는 듯하고
물속에 흰구름이 있고 나그네가 걸어가면 흰구름이 나그네를 보내는 듯하고 구름이 산 위에 걸치니 흰구름이 산으로 돌아가는 듯한 자연의 모습을 표현하였다.
이 시에서 달이 있고, 구름에 흘러가는 물길도 물속에 비춘 달의 모습이다. 조지훈이 이 시에서 힌트를 얻어 원화삼이란 시를 지었는지 모르지만 明月隋人同渡水 白雲送客獨歸山에는 “달, 구름, 물, 나그네, 간다”가 조지훈의 “완와삼”과 박목월의 “나그네”에도 있어 그럴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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