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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상식

성삼문 선생이 심은 은행나무 보존에 공로가 큰 이기래선생

by 仲林堂 김용헌 2014. 10. 10.

매죽당 성삼문 선생의 유허지는 그가 태어난 충남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에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또 하나의 유허지가 충곡서원에서 약 2km 서쪽에 있는 논산시 부적면 충곡리 한양말에 있다. 이 마을에는 성선생이 심었다는 약 500년 된 은행나무가 있다. 은행나무 아래에 성선생유허지비(成先生遺墟址碑)가 있고, 바로 그 옆에 광주이공휘기래유공비(廣州李公諱琦來有功碑)가 있다. 이 유공비는 이기래 선생님께서 성삼문 선생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은행나무가 있는 땅 206평을 사 마을에 공동재산으로 기증하였다는 공로 비석이다. 

 

목숨 바쳐 옮은 일을 하려고 했던 성선생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이런 훌륭한 분의 흔적은 나라에서 사적으로 삼아야 마땅하나 그렇지 못하여 이기래선생께서는 현인(賢人)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은행나무가 있는 성선생의 유허지를 구입하여 마을 공동재산으로 내놓은 것이다. 이기래선생 같이 나라 사랑하는 분을 있어 우리의 역사와 전통문화가 계승되지 안했나 생각한다. 다시한번 이기래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 금치 못한다.            

 

아래는 한양말 사람들이 세운 이기래 선생의 유공비이다.

 

[비 전면] 

廣州李公諱琦來有功碑(광주이공휘기래유공비)

 

비 후면 내용]

성은 광주이씨요. 휘는 기래니 한양동으로 내거하야 수년 후 모헌지심으로 매죽당께서 식주하였다고 전설이 있는 은행목 부지 충곡리 446-2번지 전 206평을 매입하여 영구보존 하기 위하여 이씨 성을 따고 옛 동명을 따서 이한복으로 등기하여 동중으로 희사하였음으로 정성어린 유공지사를 표기석재하여 후세에 불망석비하리라.

 

서기 1979년 정월  일

논산군 부적면 충곡리 동민일동

 

보충설명: 광주이씨 이기래선생은 충곡리 한양동으로 이사와 수년간 살았으며, 성삼문선생이 심었다고 하는 은행나무가 심겨진 땅 206평을 매입하여 마을이 운영하는 두레계에 희사하였다. 마을 주민은 1979년 이 선생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비를 세웠다. “이한복은 이 땅을 희사한 분인 이기래선생의 광주이씨에서 를 따오고, 한양말에서 을 따오고, 이한복씨의 부인의 이름에서 을 따왔다고 한다. “동중이란 마을에 속한다는 동중(洞中)이란 뜻이며, 마을주민이 운영하는 두레를 말한다. 모헌지심은 현인을 사모하는 마음이란 모현지심(慕賢之心)의 착오 같다. “한양동은 우암이 지은 성선생유허지비에서는 한양촌이라고 했고, 이곳 사람들은 한양말이라 통상 부르고 있다.

 

 

은행나무 아래에 있는 이기래 선생 유공 비석이다.

 

 

이기래 선생 유공비는 은행나무 아래 성선생유허지비 옆에 있다. 작은 비석이 이기래선생 유공비이다. 비석  근처를 말끔하게 정비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비석 뒷면에 선생의 유공을 기리는 내용이 있다.

 

 

이기래 선생이 기증했다고 하는 땅과 은행나무이다.

 

 

이 은행나무는 1982년 11월1일 수령 480년, 고유번호 8-7-115, 수종 은행나무, 나무둘레 3.7m, 수고 25m, 소재지 충곡리라고 지정되었다. 그 후 사진에서와 같이 논산시에서 1998년 12월1일 수종 은행나무, 수령 490년, 품격 시나무, 관리자 부적면 충곡리 이장으로 재 지정되었다. 1982년에 수령 480년이라고 했으나 16년이 지난 1998년도 수령 480년이라고 했다. 1982년 수령은 잘 못 기재한 것으로 보인다. 1982년 등록이 맞다면 2014년 현재 수령은 512년이된다.  성선생은 1456년 죽었으니 올해로 558년이 된다. 성선생이 직접 심었다면 이 나무는 수령이 558년이 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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