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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가족 이야기

정 하나 퍼주는 농사

by 仲林堂 김용헌 2012. 5. 22.

정 하나 퍼주는 농사

 

대부분 농촌 출신사람은 도시가 그리워하고 농촌이 싫었을 것이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농촌은 도시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발전이 없다보니 내 생각 또한 농업은 한계가 있으며, 농촌에는 희망이 없을 것만 같아 보였다. 그렇다 보니 직접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아예 생각하지 않았다. 이렇듯 내가 농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0여 년 전 어머니를 생각하면서부터이다.

나의 고향집 텃밭은 꽤 넓어 어머니께서는 마늘, 고추, , 배추 등 여러 가지 작물을 심으셨다. 텃밭 농사라지만 어머니께서 연세가 드시면서 홀로 텃밭을 가꾸시기 에는 힘 부치시는 것 같았다. 채소보다 과일나무를 심으면 풀을 좀 덜 뽑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텃밭에 포도나무, 복숭아나무, 배나무 등 과일 나무를 10여 주씩 심어두었다. 하지만 나무가 한 두 해 만에 크는 것도 아니고, 나무 사이에 채소를 심을 수 있어 어머니의 채소 농사는 변함없이 계속 되었다. 어머니가 점점 연로해 가셔 나는 고향에 갈 때마다 어머니의 농사를 돕는 일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채소를 심고 가꾸는 일이 단순히 어머니를 돕는 일이었지만, 어느새 그 일은 나도 모르게 재미있는 나의 일이 되었다.

무슨 일이든 처음에는 성공보다 실패가 많으며, 실패를 통하여 성공의 길을 배우게 된다. 나의 농사 또한 처음에는 실패가 많았다. 나 혼자 주말 농장을 시작한 것은 7-8년 전이다. 청계산 아래에 있는 종중 땅에 고추와 콩을 심었던 것이다. 고추에 병이 많다는 것은 알았지만 탄저병이 그렇게 심할 줄은 미처 몰랐다. 8월 초에 고추 열매에 병이 조금 발생한 것은 알았지만 휴가를 다녀와서 다시 찾은 고추밭의 고추들은 성한 것이 하나 없이 모두 탄저병에 걸려 있었다. 콩도 별다른 병이 없이 잘 자라는 듯 했다. 노린재가 콩 꼬투리의 즙액을 빨아먹어 결실을 맺지 못한 것을 보고 콩에 노린재 피해가 이렇게 크다는 사실을 다시 몸으로 알게 되었다. 나의 첫 농사는 이렇게 완전 실패였다. 뻔히 알면서도 당하는 것 같아 더 아쉬웠지만 나에게는 이 또한 하나의 큰 경험이었다.

청계산 농사를 실패하고 나서 집사람 친구로부터 집에서 가까운 자투리땅에 농사를 짓도록 허락을 받았다. 땅이 비옥하지 않아 퇴비와 복합비료를 주고 나서 옥수수와 무를 심었다. 옥수수는 잘 자랐고, 무는 무 크듯 한다는 말이 있듯이 하루가 다르게 정말 놀라울 정도로 잘 자랐다. 가끔 시장에서 보던 그런 큰 무를 내가 직접 키웠다니! 참으로 신기하기까지 했다. 잘 자라준 무 덕분에 청계산 고추와 콩 농사 실패 후 집사람에게 구긴 체면을 세울 수 있어 고맙기까지 했다.

땅주인의 사정으로 더 이상 농사를 짓지 못하고 있을 때, 마침 다른 지인으로부터 농사를 같이 짓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나는 집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왕림휴게소 근처 밭에 옥수수를 심자고 제안했다. 농사란 풀과의 전쟁이란 말이 있다. 옥수수는 처음에는 예상했던 대로 무성하게 풀 걱정 없이 잘 자라줬다. 그런데 태풍이 지나가고 난 뒤 옥수수는 다 쓰러져 있었다. 물론 태풍이 직접적인 영향을 줬지만, 옥수수를 드문드문 심어 튼튼하게 자라게 했다면 그렇게 많은 수의 옥수수가 바람에 쓰러지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쓰러진 옥수수는 알도 잘 차지 않았고 쥐의 피해가 아주 컸다. 옥수수 재배는 거의 실패로 끝났고, 남은 것은 옥수수 재배는 베게 심지 않아야 한다.”는 뼈아픈 교훈이었다.

여러 차례 농사 실패를 거듭하고 나서부터는 요즘은 더 이상의 실패 없이 농사를 짓고 있다. 이제는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70여 평의 지인의 땅에 올해로 4년 째 농사를 짓고 있다. 고추와 옥수수를 절반씩 심고, 제방에는 호박과 100포기의 감자와 토마토, 오이, 가지를 몇 주씩 심었다. 채소에 따라 약간씩 재배 방법도 달라 나에게 각기 다르게 키우는 맛을 준다.

고추는 참으로 병해충에 약하여 재배가 쉽지 않은 작물이지만 고추만큼 수확의 기쁨을 주는 작물도 없는 것 같다. 많은 량의 농사가 아니라 그런지 몰라도 고추밭 고랑에서 붉은 고추를 따면 힘들다는 생각은 하나 들지 않고 가슴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 매주 수확하는 풋고추들은 누구에게 줄까 하는 행복한 고민을 가져다주었다. 풋고추 한 봉지가 돈으로 보면 얼마 되지 않겠지만 직접 생산하였으니 정성을 담은 선물이 되기도 했다.

옥수수는 잡초방제도 별 걱정 없고, 병도 없어 고추에 비해 재배가 쉬운 작물로 여름철 간식으로 제일이다. 돈 주고 사 먹을 수도 있지만 직접 재배한 옥수수는 먹는 맛과 함께 옥수수가 다 익으면 자루에 따 넣는 손맛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옥수수는 특히 여성들이 좋아하니, 자연히 가정을 평안하게 하는데 한 몫을 한다.

배추와 무는 옥수수보다 더 손이 가지 않고 재배할 수 있는 작물이다. 가을에 재배해서 풀도 많지 않아 비닐 피복 없이도 재배할 수 있고, 병해충 발생도 적어 석회만 주면 잘 자란다. 풋고추와 옥수수는 지인들과 같이 나눠 먹지만, 배추와 무는 자식, 형제, 처남 등 가족들에게 나눠 주고 있다. 크지 않은 선물이지만 땀과 정성이 담긴 그것들이 우리 가족을 더욱 끈끈하게 연결해 주겠지 생각하면 내 마음은 흐뭇할 뿐이다.

풋고추 한 봉지는 반찬거리, 옥수수 한 자루는 주전부리일 뿐이며, 배추와 무도 시장에 널려 있지만 내가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어 키우면, 거기에 정 하나가 붙게 된다. 어머니 때문에 시작한 농사가 이웃과 친지에 정 하나 퍼 주게 했다. 그 정은 다시 내게 돌아와 나를 살맛나게 한다. 땅은 어머니와 같은 것이라고 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신비하게 생명을 탄생시키고 자라게 한다. 내 어머니같이. 지금 나의 어머니는 거동이 불편하여 더 이상 농사를 짓지 못하시지만 농사는 늘 나에게 어머니를 생각하게 한다.

 

 

글쓴이: 김용헌 010-8988-6324, yong716@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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