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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山金氏 이야기

광산김씨대종회 임원 청강 김영훈 선생 묘역 참배

by 仲林堂 김용헌 2014. 10. 13.

 광산김씨대종회 임원단합대회의 행사로 2014년 10월12일 새벽에 대종회 5-6대 회장을 역임한 김영훈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였다. 숙소에서 6시반에 버스로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 길상산 아래까지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걸어서 산길을 약 2km 걸어 올라가자 광산김씨 의정공후 한성좌윤공파 돈영공세장지라고 쓴 큰 안내석이 있었다.

 

청강(晴崗) 김영훈(1882-1972)은 1882년 강화도 강화읍 관청리(官廳里)에서 출생하여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다가 15세 되던 해에 눈병을 앓은 것이 계기가 되어 당시 인천에서 활동하던 명의 서도순(徐道淳)의 문하에서 한의학을 공부했다. 서도순은 당시 한국의 『의학입문』 연구 계통의 중요한 인물이었기에 김영훈이 그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그는 수년간의 학술연마 끝에 대성했고, 이때 쌓인 학문적 역량은 그의 평생의 학문적 업적으로 이어졌다.

1904년 최초의 근대적 한의과대학인 동제의학교가 설립되어 교수를 뽑자 이에 지원하여 수석으로 합격해 도교수(都敎授)가 되었다. 이후 그동안 이 학교의 실제적 후원자였던 고종이 퇴위하여 동제의학교가 문을 닫게 되자, 전의 출신이며 당시 한의계의 원로였던 홍철보, 장용준, 최규헌 등과 함께 팔가일지회(八家一志會)를 만들어 한의학 부흥운동에 힘을 기울였다. 이들은 1909년에 대한의사회라는 한의사 단체를 만들었다.[네이버 지식백과] 근현대 한의학의 선도자 김영훈 (근현대 한의학 인물실록, 2011.10.26, 도서출판 들녘)

그는 광산김씨대종회 5-7대 회장으로 광삼김씨대종회 발전에 공로가 컸다. 晴崗은 광산김씨대종회 회장으로 재임시인 1957년에는 광산김씨대동보인 한성대보를 발간하여 광산김씨대종회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광산김씨 구, 대종회관(종로구 권농동 소재)을 마련하여 오늘날의 대종회 발전에 초석이 되었다.그의 아들 김기수도 대종회 제27-28대 회장을 역임하였다.  

광산김씨 의정공후 한성좌윤공파 돈영공 세장지란  안내비이다. 世葬地는 대를 잇는 묘소란 뜻이다.

김윤중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김영훈 선생 묘소에 참배하고 있다.

참배하는 도중에 해가 뜨고 있다.

청강선생의 묘역은 말끔하게 잘 보존되어 있었다.

청강의 손자 용건(맨 우측)씨께서 묘소 앞에서 참배객들에게 인사소개하고 있다.

學長公 晴崗 永勳之墓  配 淑人 坡平尹氏祔左라고 쓰어 있다. 직위는 학장이며, 호는 청강이고, 영훈지묘는 영훈의 묘이고, 배는 배우자며 숙인의 부인의 품계이고, 부인은 파평윤씨이고 부좌는 부인을 좌측에 합장하였다는 뜻이다. 청강은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명예학장으로 위촉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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