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서원

호남의 대표적인 서원 필암서원

仲林堂 김용헌 2024. 5. 19. 22:38

문루인 확연루이다.확연(廓然)은 크고 넓은 무한한 영영을 뜻한다. 하서 김인후의 인품과 학문이 정자가 "군자는 학문이 확연하여 크게 공정하다"라는 말씀에서 우암 송시열이 확연루라고 현판을 썼다고 한다.

 

필암서원의 조감도이다.
사당인 우동사(祐東祠)이다.
정조가 쓴 경장각 현판이다.

 

강당인 청절당(淸節堂) 뒷편 모습이다.
동재인 진덕재(進德齋)이다.

 

서재인 숭의재(崇義齋)이다.
묘정비와
보물 제587-13호로 지정된 봉심록이다.

작성 중

 

첨성대 아래 큰 바위에 선조의 글씨인 만절필동(萬折必東)과 숙종의 글씨인 화양서원(華陽書院)이란 암각이 있다. 만절필동은 황하(黃河)가 만 번 굽이 처도 결국은 동()으로 간다는 뜻으로 동()은 원래 중국의 동쪽을 가리키나 우리나라로도 볼 수 있다. 황화의 문명은 결국은 조선에까지 이른 다는 의미로 넓혀본다

 

 우암은 금사담 계곡 건너편에 초가 3칸 집(溪堂)을 지었다고 한다. 우암이 서거한 후 암서재(巖棲齋)를 지었다고 한다. 암서재 옆 직립한 바위에 창오운단 무이산공(蒼梧雲斷 武夷山空)이란 우암의 쓴 암각문이 있다. 창오운단에서 창오(蒼梧)는 순임금이 죽은 곳이다. 창오에 구름이 끊어졌으니 더 이상 요()()()()(文王)(武王)주공(周公)으로 이어지는 도통(道統)이 끊겼음을 이야기하고, 그 끊긴 도통을 무이산에서 공부한 주자(朱子)가 이었으나 이제 무이산도 비었다며 도통이 끊어졌음을 한탄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