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만제(서호공원)

서호(축만제) 해설(10): 새마을운동의 요람 '농민회관과 새마을지도자연수원 터'

仲林堂 김용헌 2021. 3. 12. 09:30

지금은 세상이 발전하여 4차 산업시대라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수천년간 농경의 1차산업에 머물렀고, 공업화의 2차 산업으로 발전한 것은 겨우 50년 전인 1970년대초 이다. 그 때만해도 먹을 게 없어 초근목피에 물 한 모금 마시며 살았던 보리고개가 있었다. 먹고 사는 것이 우선이니 농민의 위상도 높았다. 

 

농민회관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성로 92에 소재하고 있다. 이 건물은 1971 2 14일 기공식을 갖고 그해 11월 완공했다. 농민회관 건설비용은 전국 농가에서 20원씩 모아서 건설했으니 지금으로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에는 건설비 조달 방법만으로 보아도 그 만큼 농업의 위상이 얼마나 높았나 짐작이 간다. 이 공사는 전국적 관심을 끈 큰 공사였다. 당시에는 수원시에서 가장 높은 최신식 건물이었다.

 

우리나라는 70년대초는 공업화가 시작되면서 배고품에서 벗어나고 있던 시대였다. 이제 가난에서 벗어나 우리도 잘 살아보자는 새마을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새마을운동의 진원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새마을지도자연수원이었다. 이곳에서 1973년 3월부터 1983년 3월까지 550회에 걸쳐 77,851명이 새마을 교육을 받았다. 그 중에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있었다. 정치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 이념으로 새마을운동으로 삼았고, 새마을 운동의 중심이 농촌진흥청 농민회관에 있었다. 새마을 운동의 흔적을 이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농민회관이다. 이 건물은 지금 (사)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10층 건물로 2층은 예식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우측 2층이 강당으로 70년대 새마을연구 교육을 실시했던 강당이다.

 

이 건물 현관 벽에 걸린 박정희 대통령의 어록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로 쓴 "농민회관"글씨가 보인다. 최근에 이 글씨를 2층에서 10층 옥상으로 옮겼다.

 

농민회관 건립 이력이다.

 

건립 당시 사진이 보인다. 그 후에 농민회관의 모습이다.

 

새마을 교육 사회지도자반 제52기로 입교하여 기념촬영한 노무현대통령이 있는 사진이다.
이 건물을 건설할 때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그 때 공사 모습은 요즘 북한에서 공사와 같이 장비보다는 사람의 힘으로 일했다.

 

농민회관 앞에 있는 새마을지도자 연수언터이다. 나도 이곳에서 교육을 받았다.

 

1973년부터 1983년까지 77,851명이 교육을 이수했다는 표지석이다.